생각의 흔적

하버드 중국사 원 명

 

이 책은 고려후기 원나라와 연관있는 문제를 가지고 논문을 작성해야 해서 읽었다.

이 시리즈는 하버드를 중심으로 구미권에서 활동하는 중국사 전문 학자들이 시대별로 쓴 것으로, 모두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캐나다 출신의 티모시 브룩은 특히 명대를 연구하는 저명한 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사 놓고 읽진 못했지만 제목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능지처참>>(너머북스, 2010)이라는 책을 쓴 학자이기도 한다. 

원나라와 명나라의 역사를 다루는 이 책은 용으로 시작해서 용으로 끝난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고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상이변이 생기면 사람들이 용을 보았다고 믿는 것이다.

중세 동아시아에서 평범하지 않은 것 또는 이상한 일이 생길 것을 경고하는 지표였다.

저자는 폭넓게 중국측 기록과 구미권의 연구성과를 섭렵하여 기후변화와 왕권과의 관계를 흥미롭게 서술하였다.

기후가 어떤 방식으로 원명의 역사에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왕조의 운명을 가를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다. 

기후의 변화는 자연재해를 가져오고 왕조는 위험에 빠진다.

자연재해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이 발생한 후 극복하기 위해 왕조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그것을 집행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왕과 국가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따라 왕조의 흥망이 달라진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특히 원에서 명으로 이어지는 시기동안 극심한 자연재해 때문에 국가 전체가 늪에 빠지는 '9개의 늪' 시기가 있었고, 이것을 극복하느냐 아니면 그 늪때문에 더 어려움에 봉착하느냐가 갈렸다고 설명한다.

13세기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중국이라는 광대한 대륙의 역사를 한권의 책으로 저자의 독특하고 일관된 관점을 가지고 쓰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기후사적 관점을 꾸준히 견지하면서도 두 왕조의 행정과 제도, 경제 성장, 가족, 상업, 사상 등을 놓치지 않고 설명하고 있다.

내용이 좋은 것은 당연하고 저자의 내공에서 나오는 유려한 문체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글로 구체적으로 설득력있게 표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이렇게 하나의 줄기를 잡아가면서 그에 걸맞는 내용을 엮어서 책장이 빨리 넘어가도록 흡인력을 가진 글을 쓰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또는 글쓰기에 관심있는 사람 모두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휴면상태로 너무 오래되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글을 올려볼까 생각한다.

한 2년정도 계속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로 강의와 논문, 그밖에 자잘한 많은 일들 때문에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욕심내지 말고 일주일에 1편 정도는 올려야지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휴면상태를 해지하고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전시리뷰나 해볼까한다.

그것도 생각해보니 작년 9월에 본 전시라서 시류에는 맞지 않는다...

그래도 글감이 없으니 기억을 더듬어 쓴다.

 

 

원래 보고 싶기도 했고 마침 전시기간 중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학술대회의 토론을 맡게 되어 이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왕이 사랑한 보물>전은 18세기 독일 아우구스투스 2세가 수집하고 제작한 다양한 재질의 보물을 전시한 것이다.

강건왕이라 불렸던 아우구스투스는 궁전을 짓고 전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보물들을 소장하는 것에서 나아가 여러 재료를 활용해 당시 유럽에서 이름을 날리던 공예가들을 고용하여 직접 공예품을 만들었다.

그것도 재질별로 참으로 다양하게 제작했다.

금, 은,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같은 보석뿐만 아니라 상아, 청동, 유리, 가죽, 산호, 조개, 진주, 도자기 등 정말 다양한 재료를 활용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산호나 조개, 진주와 같은 자연에서 나온 재료를 가지고 그것을 최대한 원형을 활용하여 만든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대부분 당시에 유명했던 공예가가 만든 것들이었는데 작가의 상상력이 십분 활용되었다.

 

     

 

예술에 대한 왕의 적극적인 후원은 끊임없이 작가들의 상상력과 작품실력을 향상시켰고 획기적이고 좋은 작품들이 양산되었음을 이 전시를 통해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왕은 또한 도자기 역시 당시 유럽을 휩쓸고 있던 중국와 일본의 도자기를 수집하고 결국에는 그것을 유럽 최초로 제작하는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명 사치품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가들을 양성하고 나아가 기술혁신까지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토대에는 왕의 생각이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전시를 보면서 같은 시기 우리의 조선은 어떤 모습이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유교적 세계관때문에 '사치', '보물', '고급'이라는 것에 위정자는 알레르기가 있었고 이러한 전반적인 분위기는 공예품이나 예술에 대한 천대와 멸시로 나타나고 말았다.

분명 무분별한 사치는 경계해야 하지만  그렇게 무조건 억누르는 것, 부도덕한 것으로 매도하는 것이 진정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멋지고 화려한 보물들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은 전시였지만 반면에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서는 약간의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gt;대통령의 글쓰기&lt; (메디치, 2014.2, 강원국 저)

 

세상이 시끄럽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위정자가 하는 말을 사적으로 손대는 사람이 있었고 그것을 앵무새처럼 최고 권력자가 말했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어쩐지 이상하더라' 하는 의심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다시 대통령의 말과 글이 주목받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팟캐스트 방송에서 김대중, 노무현대통령 시절 연설비서관의 책을 알게 되었다.

워낙 저자가 재미있게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나도 글쓰기를 직업으로 갖고 있어서 더 관심이 갔다.

당장 사기는 했으나 밀린 일들이 워낙 많아서 시간내기가 어려워 이제야 읽었다.

이 책은 김대중, 노무현대통령의 연설을 중심으로 좋은 글을 쓰는 방법들을 알기 쉽게 담백한 문체로 서술했다.

좋은 글, 남을 설득하는 논리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생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은 자기 자신이 가진 콘텐츠라는 말이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분야에 대한 공부와 정리가 필요하다.

특히 지금처럼 많은 정보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는 그것을 필터링하여 정확한 정보로 매만지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자기의 콘텐츠가 생산되고 이것을 중심으로 말과 글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아무리 많고 좋다 하더라도 결국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 점을 저자는 두 대통령의 예를 적절히 들어가며 알기 쉽게 설명한다.

메모와 독서는 다시 강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중요한 것이고 글을 쓴 이후에는 그것을 계속 고치고 좋은 표현을 찾는 노력을 끝까지 해야 한다고 말한다.

두 대통령은 이것을 실천했던 사람들이었다.

주로 논문을 쓰는 내 입장에서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는 내용이었다.

글을 잘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공부한 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글로 표현하여 가장 잘 전달되도록 마지막까지 고치는 것이다.

내일 논문 수정본 제출 마감일이다.

거의 1년 이상 매달렸던 논문의 마지막 교정을 남겨두고 있다.

아마 수십번도 더 출력해서 수없이 고친 논문이다.

논리를 세우기 위해 했던 수많은 고민과 자료정리, 그리고 글을 쓰는 과정이 모두 힘들었다.

교정도 신물나게 보았다.

하지만 아직도 고칠것이 남아 있다.

내일 마지막 메일을 보내는 순간까지 고쳐야 할 것이고 그것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글이나 말을 논리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일개 논문도 이런 과정을 거쳐야 통과가 되는데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은 커녕 남이 써주는 것을 아무 생각없이 읽었다니 기가 차다.

이 책의 필자가 어떤 강연에서 말했듯이 이 사건 이후에는 아마 전반적으로 우리 국민들의 글쓰기 실력이 향상될 것 같기는 하다.

몇년전에 나온 책이지만 말도 안되는 정치적 사건때문에 재조명되고 있는 책이기도 하고 두 대통령의 글쓰기에 대한 철학과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글쓰기의 중요성 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으니 많이들 읽으시길 바란다.

 

책에서 가장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노무현대통령의 글쓰기 지침 중 하나인데, 정말 핵심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라 소개한다.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