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흔적

하버드 중국사 원 명

 

이 책은 고려후기 원나라와 연관있는 문제를 가지고 논문을 작성해야 해서 읽었다.

이 시리즈는 하버드를 중심으로 구미권에서 활동하는 중국사 전문 학자들이 시대별로 쓴 것으로, 모두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캐나다 출신의 티모시 브룩은 특히 명대를 연구하는 저명한 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사 놓고 읽진 못했지만 제목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능지처참>>(너머북스, 2010)이라는 책을 쓴 학자이기도 한다. 

원나라와 명나라의 역사를 다루는 이 책은 용으로 시작해서 용으로 끝난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고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상이변이 생기면 사람들이 용을 보았다고 믿는 것이다.

중세 동아시아에서 평범하지 않은 것 또는 이상한 일이 생길 것을 경고하는 지표였다.

저자는 폭넓게 중국측 기록과 구미권의 연구성과를 섭렵하여 기후변화와 왕권과의 관계를 흥미롭게 서술하였다.

기후가 어떤 방식으로 원명의 역사에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왕조의 운명을 가를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다. 

기후의 변화는 자연재해를 가져오고 왕조는 위험에 빠진다.

자연재해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이 발생한 후 극복하기 위해 왕조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그것을 집행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왕과 국가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따라 왕조의 흥망이 달라진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특히 원에서 명으로 이어지는 시기동안 극심한 자연재해 때문에 국가 전체가 늪에 빠지는 '9개의 늪' 시기가 있었고, 이것을 극복하느냐 아니면 그 늪때문에 더 어려움에 봉착하느냐가 갈렸다고 설명한다.

13세기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중국이라는 광대한 대륙의 역사를 한권의 책으로 저자의 독특하고 일관된 관점을 가지고 쓰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기후사적 관점을 꾸준히 견지하면서도 두 왕조의 행정과 제도, 경제 성장, 가족, 상업, 사상 등을 놓치지 않고 설명하고 있다.

내용이 좋은 것은 당연하고 저자의 내공에서 나오는 유려한 문체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글로 구체적으로 설득력있게 표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이렇게 하나의 줄기를 잡아가면서 그에 걸맞는 내용을 엮어서 책장이 빨리 넘어가도록 흡인력을 가진 글을 쓰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또는 글쓰기에 관심있는 사람 모두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시기> 시리즈는 오랜기간동안 스테티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문교양서이다.

나도 대학다닐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까지 국내를 중심으로 한 답사기만 나오다가 최근 다시 시리즈가 시작되면서 해외편이 나오고 있다.

해외편은 일본이 중심이 되는데 가장 먼저 나온 것이 규슈편이다.

규슈는 일본 중에서도 한반도와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지역으로 일찍부터 한반도와 밀접한 영향관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 한반도의 문화가 직접 전해진 곳이라는, 즉 한반도 문화가 일본보다는 우수하다는 내용을 강조할때 주로 예로 드는 곳이 규슈이다.

청동기문화에서부터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규슈를 대표하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 한반도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견해는 최근까지도 불문율처럼 한국 역사학계와 일반대중들을 지배한 하나의 이념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자료의 발견과 연구를 통해 한반도로부터의 일방적인 문화 전파가 아니라 쌍방간의 교류라는 점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저자도 일방적인 시각이 아니라 쌍방적인 시각에서 규슈의 문화를 바라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이후 한반도의 도자기와 도공들이 규슈로 대거 이동하면서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도자기문화가 꽃피게되는데, 기존의 시각이라면  조선의 우수한 도자기문화를 일본에 빼앗겼다라는가 우리가 먼저이기 때문에 무조건 우수하다라는 견해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런 면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저자는 조선도공을 우대한 일본의 정책을 통해 도공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우수한 품질의 도자기를 만들수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른바 장인을 우대하는 일본 특유의 문화의 기반위에서 비록 원천기술은 전래된 것이지만 하나의 문화로 승화시킨 것은 일본 자체의 노력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견해에 대해 나는 개인적으로 동의한다.

아무리 좋은 선진적인 문화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고 노력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그냥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현상에 머물고 말 것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면 수용을 넘어서 또다른 새로운 문화로 발전시킬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전해주는 것과 그것을 꽃피우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가치있는 것인가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데, 나는 후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많은 점에서 연구하고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것 같다.

도자기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가 우리와 달리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끊임없이 일본화시키는 그들의 저력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장점을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단순히 일본 규슈지역 중 한반도문화와 관련된 유적의 답사기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일본문화를 바라보고 그 안에 자리한 한반도의 영향관계를 해석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18세기의 맛

 

이책은 잡은 지는 오래되었으나 다 읽은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논문을 끝내고 바로 읽기 시작했지만 그 사이에 급하게 해야하는 일이 있어서 꾸준히 읽지 못하였다.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이 책은 18세기 유럽, 미국, 일본, 중국, 한국 등에서 살펴볼 수 있는 맛과 관련된, 즉 음식과 관련된 역사책이다.

술, 차, 커피와 같은 기호식품을 비롯해 진, 삼해주, 와인, 맥주와 같은 술에 대한 18세기인들의 다양한 시각을 알 수 있다.

또한 고추장, 조선의 소고기 환약, 솔잎 등 조선의 18세기를 상징하는 음식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이외에도 소금, 버터, 감자, 파스타 등 다양한 음식에 얽힌 역사와 그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각 주제마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풍부한 사료와 시각자료를 활용하여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한 주제마다 분량이 많지 않으므로 끊어 읽어도 크게 단절되는 느낌이 없어서 좋았다.

각국의 상황은 다르지만 18세기라는 공간이 중세에서 벗어나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시작되고 꽃피우는 시기라는 점과 동서양 모두 왕조중심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모순들이 극대화되어가던 시기이기도 하여 그 안에서 음식과 관련된 역사가 어떻게 펼쳐졌는지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특히 조선의 18세기를 대표하는 솔잎은 일반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을때 먹을수 밖에 없었던 구황식물로, 당시 조선은 두번의 전쟁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연재해 때문에 기근이 심각하였다.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곡식이 부족하자 솔잎먹는 방법이나 요리를 개발해 국가가 널리 홍보하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솔잎은 너무 맛이 없었고 변비 등 여러 다른 질환을 동반하였다.

하지만 국가는 백성들이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곡식도 제공하지 못하였고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솔잎을 먹을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백성들이 솔잎을 먹을때 상업경제와 수공업의 발달로 부를 축적한 중인이상의 사람들은 18세기가 되면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이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반면, 한쪽은 넘치는 부를 사치에 사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지금의 모습과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모든 물질문화의 등장과 유행, 변화, 소멸 등은 간단하지 않다.

동시기 다른 문화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거치며 그 과정을 통해 존폐가 결정되기도 한다.

이것은 맛과 관련된 수많은 키워드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책을 읽으며 17세기의 맛, 19세기의 맛, 20세기의 맛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였고, 개인적으로는 고려시대의 맛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알고 싶기도 하다.

지대물박

 

'地大物博'. '땅은 크고 문물은 넓다'

직역하면 이런 뜻이다.

중국의 넓은 땅과 그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여러 문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음을 나타내는 의미이다.

얼마나 그 땅안에, 그 사람들이, 그 문물이 다양하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한반도처럼 작은 땅에서도 지역이 나뉘고 그에 따라 지역색이 분명한 문화가 있음을 볼때 중국은 어떠할지 상상하기조차 힘들지 모른다.

 

이 책은 중국에서 중국미술사를 전공한 미술사학자에 의해 씌여진 책이다.

따라서 각 주제마다 깊이도 있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중국유학을 마치고 막 한국에 오셨을때 대학원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중국미술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최신 자료를 이용해 강의를 진행하셔서 인상깊은 수업 중 하나였다.

물론 학생들이 못 알아듣거나 너무 아는 것이 없어서 실망하셨던(?) 적도 많으셨다.

듣는 학생들이야 흥미로웠지만 강의하는 입장에서는 많이 답답하셨으리라.

 

신문에 소개된 글을 읽고 바로 구입해서 읽게 되었는데 예전에 수업때 강조하시거나 주제로 삼았던 내용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어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중국미술사를 각각의 주제별로 하면서도 큰 줄기는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먼저 선사와 고대에 해당하는 옥기와 청동기를 비롯하여 수많은 유물이 발견된 진시황릉에 대해 다루고 있다.

또한 자금성의 구성을 통해 중국인의 천하관을 살펴보고 있으며, 북경에 위치한 천단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그 성격이 바뀌었는지 설명하였다.

사방이 막힌 중국의 주거문화의 대표적인 특징인 사합원과 건축기술의 발전과 가구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살피고 있다.

이외에도 북제시대 황제의 석굴인 북향당석굴과 중국 회화를 읽는 방법, 길상을 추구하는 중국의 공예 등에 대해 비교적 알기 쉽게 서술하였다.

중국미술이야 그 양과 질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방대하고 다양하다.

그 내용을 다 알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 책을 통해서 중국미술사의 맛보기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이중에서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북향당석굴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북항댱석굴은 중국 하북성 자현에 있는데, 고산의 중턱에 있다.

북제의 문선제의 무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북동을 비롯해, 중동, 남동 3개로 구성되어 있다.

황제가 직접 건설에 관여한 석굴로 황제의 권위를 부처에 투영하여 백성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석굴이다.

이 부분이 특히 내게 와닿았던 것은 가본 곳이기 때문이다.

2013년 여름 학교에서 가는 중국답사에서 예정에는 없었지만 박물관 관람시간이 안맞는 바람에 현지에서 급하게 차를 빌리고 가이드를 사서 갔던 곳이다.

주로 간 사람들이 도자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이라 북향당석굴에 대해서는 거의 정보도 없이 무작정 찾아갔었다.

당시는 8월 중순으로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우리나라의 여름보다 몇배는 더운 날씨였었고(아마 40도는 족히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굴이 그렇게 산 중턱에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멀리 차에서 보았을때 산 중턱에 있는 건축물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랬건만 석굴은 그곳에 있었다.

끝까지 가야하나 아니면 포기하고 내려가야 하나 고심하다가 그 더위에 올라간 것이 아쉬워 끝까지 갔었는데, 그때 본 것은 중동이었다.

아름답게 채색된 불상이 인상적이었으나 거의 실신 직전이어서 제대로 감상하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북향당석굴의 의미를 알게 되어 기쁘면서도 그때 알고 봤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든다.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미술품을 포함한 여러 물질문화는 얼마나 알고 보느냐에 따라 더 많이 기억에 남는 것 같다.

핸드폰을 뒤져보니 그때 찍었던 북향당석굴의 사진이 있다.

같이 갔던 사람들사이에서 그때 답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답사장소이기도 하다.

 

 

 

 

 

사치란 사전에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주로 씀씀이나 꾸밈새, 행사의 치레 따위에서,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씀으로써 자신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함"

위의 표현처럼 사치라고 하면 일단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 보통이다.

이를테면 절제, 검소, 절약의 반대말로 사치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는 각 문명별로 사치가 그 문명을 어떻게 견인했는지 서술하면서 사치를 그저 부정적인 언어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문화적 동력이 된 사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인류의 각 문명은 끊임없이 사치스러움, 사치품을 갖고자 노력하였고 그것을 만들어내거나 얻어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음을 말하고 있는데, 고대의 수메르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를 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의 도자기, 비단, 칠기, 옥이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부와 발전을 가져다 주었는지, 또 중국의 이러한 물건이 비단길이나 해상무역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이것이 서방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사치를 크게 두개의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사치품으로 대표되는 물질적 사치와 철학, 문학, 종교 등에서 추구하는 비물질적 사치의 구분이 그것이다. 

때문에 내용이 어느부분에서는 많이 소략되어 있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곳도 있으며, 예로 든 사치품의 사진이 빠져서 정확하게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 감이 안 오는 부분도 있다.

또 지나치게 비물질적 부분의 사치에 대해서-예를 들어 그리스의 철학- 설명하다 보니 이것이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사치의 영역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차라리 비물질적 사치 부분은 빼고 물질적 사치부분에 집중하였다면 더 많은 것을 말할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장점은 기존에 사치라는 단어가 가졌던 부정적 의미를 넘어 긍정적 의미까지도 짚어 보게 하였다.

저자의 말처럼 사치는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워졌는가의 기준이 되어야 하며,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또한 치스럽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적정선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역사의 흐름을 보면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과연 문화적 동력이 되는 사치를 추구하는지 아니면 그저 망하는 지름길로 가는 사치를 하고 있는 것인지 묵직한 물음이 있는 책이다.

나라의 정화 조선의 표상

 

학부강의를 듣는 학생들 중 교생실습때문에 시험을 보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다.

때문에 시험대신에 과제를 내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나라의 정화, 조선의 표상 일제강점기 석굴암론'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이다.

중간고사 범위가 통일신라시대까지였으므로 석굴암에 대해서 깊이있게 이해하는 것도 좋을듯 싶었다.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었으니 선생은 책을 정성껏(?) 읽는 것이 당연하다.

간만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펜으로 줄을 치고 군데군데 느낀점이나 생각하는 바를 적다가 어느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너무나 화려하게 책 읽은 티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정성껏 읽었다.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었기에 아깝지만 도서관에는 새책을 사서 갖다주어야 할 것같다.

출간한지 오래된 책이면 그냥 눈감고 넘어가려 했는데 학교에서 구입한지 2달도 안 된 책이니 그러기에는 너무 양심에 찔린다.

여하튼 이 책은 내용을 떠나서 나에게 에피소드를 남긴 책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왜 석굴암을 '우리민족의 자랑' 혹은 '동양 최고의 예술품'으로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까에 의문을 품고 그러한 생각이 시작된 원인을 찾아보고자 했다.

언제부터 석굴암을 그렇게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왜 우리는 석굴암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동안 너무나 당연한 사실로만 인식하고 있었음에 화들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어렸을때부터 학교에서, 방송에서, 책에서 막연히 그렇게 이야기 했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저자는 석굴암이 우리에게 처음으로 민족문화의 정수로 알려지고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일본 학자들에 의해서 였다는 점을 여러 자료를 예시로 들며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의 역사와 문화재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하는 작업을 매우 광범위하게 하였다.

일제가 그렇게 했던 것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 제국주의가 확산되고 서구 열강들이 아프리카나 동양 등을 식민지화 하는 과정에서 식민지 자체의 방치된 역사와 유적을 다시 '재발견'하는 것이 유행하였기 때문이다.

식민지배를 받는 국가들은 근대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찬란했던 과거의 역사와 문화유적을 발견하지도 못하고 그것을 연구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어야 했다.

앙코르와트나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드르가 대표적인 예이다.

동양의 서구열강을 자처한 일본 역시 자신들이 식민지로 삼고자 하는 조선의 예전 영화로운 문화가 일본에 의해 발견되고 재해석하고자 하는 생각이 강했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때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조선에서는 석굴암이 제시되었다.

일제는 조선인에 의해 방치되었던 석굴암을 일본 우편배달부가 발견하여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자신들의 문화조차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당시의 조선을 한없이 우스운 존재로 만드는 것이었다.

특히 석굴암은 일본학자들에 의해 한국미술의 절정기로 평가받는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선의 가장 찬란한 시기의 문화재를 일본의 손으로 찾고 일본의 돈을 들여 수리까지 하는 등 그것을 만들었던 주체는 완전히 사라지고 그것을 발견한 사실만이 부각되고 말았다.

일제강점기동안 석굴암은 철저히 일본인이 바라보는 대로 조선인들에게도 그대로 인식되었고 결국에는 철저히 관광상품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석굴암의 본래 조성목적이나 기능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그저 문화재로써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도 그러한 시선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는데, 물론 여러 자료와 수업을 통해 석굴암이 지나치게 포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는 줄은 몰랐다.

석굴암은 본래 예배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냥 가서 보고 본존불이 크구나, 조각들이 멋있구나 느끼라고 신라사람들이 고생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라도 석굴암에 덧씌어진 여러 시선에서 자유로워져 있는 그대로의 석굴암, 만들었던 당시의 석굴암, 그것을 계속 지켜봐았던 사람들의 석굴암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렇게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된 것이 석굴암 뿐이겠는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역사와 문화재가 일제를 거치며 상당부분 이상하게 왜곡되는 현상을 거쳤다.

이제는 덧칠된 것을 벗겨내고 본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절실한 때인것 같다. 

 

신라수공업사

 

이 책은 아주 오래전부터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내가 산 것은 확실하나 언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전공과 관련된 것이라 막연히 사놓고 언젠가 보겠지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박사논문 꼭지 중 고려시대 수공업체제에 관한 내용이 들어가야 해서 결국에는 빼들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모두 문헌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부분 아주 적은 사료를 가지고 추론하곤 한다.

이 책 역시 몇줄 되지 않는 삼국시대, 특히 신라에 관한 사료를 모아서 당시 수공업체계에 대해서 서술했다.

신라는 궁중수공업, 관영수공업, 민간수공업이 있었고 이것이 신라 1000년의 역사동안 변화해간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왕실을 중심으로 한 궁중수공업이 주를 이루다가 신라하대가 되면 상당부분 궁중수공업이 관영수공업에 흡수되고 기술력의 발전에 따라 민간수공업이 발전해 나갔다는 것이 대체적인 책의 내용이다.

신라가 다양한 공예품을 만든 것은 왕실을 중심으로 한 적극적인 궁중수공업의 발전에 힘입은 것이며 이것이 관영수공업과 민간수공업의 발전을 견인하였다고 볼 수 있다.

벌써 나온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책이라 최근의 연구결과가 반영되어 있지 않아 최근 논문을 뒤져야 할 것 같다.

고려시대 수공업에 관한 내용을 알아야 하지만 결국에는 전 시기인 삼국시대와 이후 시기인 조선시대 수공업체제에 관한 내용을 속속들이 까지는 아니어도 대충이라도 알아야 비교가 가능할 것 같다.

결국 내 책상에는 이 책을 중심으로 시대를 망라한 수공업 관련 책과 논문이 쌓여 있으며, 출력하지 않은 논문 역시 컴퓨터에 한가득이다.

학교에 가서 찾아봐야 하는 책까지 목록으로 정리되어 있다.

수업들을때 교수님 말씀대로 제대로 그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뒤로 또 옆으로 다 공부해야 되는 것 같다.

공부는 정말 끝이 없다...다만 봐야될 자료만 늘어갈 뿐이다.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한국생활사박물관 1~12>>, 사계절

 

학부 강의나 개론 강의를 할때 대표적으로 추천하는 책 중 하나이다.

우리 집에는 이 세트가 다 있는데, 관심사에 따라 낱권으로 사도 된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생활사'에 초점을 맞추어 다양한 이미지와 그림, 설명이 잘 들어가 있다.

한국사를 박물관의 전시를 관람하는 것처럼 다양한 사진과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 학계의 저명한 학자들이 참여한 책이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다 볼 수 있는 책으로 방대한 한국사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였고 여기에 수록된 그림들은 여러 박물관에서 전시할 때 저작료를 지불하고 빌려 쓸 만큼 공을 들였다.

보통 역사를 복원한 그림은 사실이 왜곡되기 쉬운데 이 책은 그러한 점에서 공을 많이 들였다. 

그래서 따로 스캔해서 강의시간에 아주 잘 활용하고 있다.

책 중간중간 접지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 펼쳐보는 재미 또한 있다.

무엇보다도 현대사부분에서 우리가 빼먹기 쉬운 북한의 생활상까지도 하나로 묶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내 전공과 관련한 고려시대는 두권으로 되어 있는데 문헌자료와 발굴자료를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성실하게 복원해 놓았다.

글 내용은 대체로 평이한 편은 아니나 이미지가 많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미지위주로 보다가 관심있는 부분을 읽어보는 방식으로 여러번 읽는 것이 효과적인 책인것 같다.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까지도 두고두고 볼 수 있으니 적극 추천한다.

 

 

박종기, <<고려의 부곡인, <경계인>으로 살다>>, 푸른역사, 2012.

 

우리는 하나의 대상을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어느쪽에 분류하려고 한다.

여기 아니면 저기에 속해야 마음이 평안하고 안정된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

사상, 종교, 문화, 정치 등등 자기가 속한 혹은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길 강요받고 때로는 상대방에게 강요한다.

역사학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처럼 고려시대의 사람들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여기 아니면 저기라고 말해야 한다고 무언의 압력을 받아왔다.

구체적으로 고려사람들을 양인과 천인으로 구분하고 부곡에 속하는 사람들(향, 부곡, 소, 처, 장 등)을 어느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저자는 고려시대 부곡집단은 사회경제적으로 왕조정부의 수취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 존재로, 생산기능과 역할에 따라 3가지 집단으로 구분하였다.

향과 부곡, 소, 장과 처의 구분이 그것이다.

향과 부곡은 새로 개간을 통해 형성된 새로운 촌 혹은 고려를 건국할때 반왕조 집단을 지방에 편제하는 과정에서 생긴 특수촌락이다.

소는 광산물, 농수산물, 수공업제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곳으로 해당 물품의 원재료가 풍부하게 생산되는 곳으로 주로 설치되었다.

처와 장은 왕실과 사원의 수조지(그 땅에서 사는 세금을 직접 왕실과 사원에 바치는곳)이다.

기존 연구에서는 부곡집단을 양인 혹은 천인으로 명확히 구분하여 보고자 했다.

하지만 저자는 넓은 의미에서 부곡집단을 양인으로 보되, 양인과 천인의 경계선에 서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에 경계인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이다.

최근에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안 그래도 많은 부분에서 경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여기에 속하는 것도 같고 저기에 속하는 것도 같은 것이 우리 역사에는 너무 많다.

이것을 내 판단에 의해 구분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의문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아니 직접적으로 말해 너무 어렵다.

또한 문헌이나 자료에서 명확하게 설명해줄수 있는 근거가 많으면 좋은데 아쉽게도 별로 없다.

그래서 요즘 드는 생각은 경계에 있는 것들에 대해 너무 빨리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작위적이더라도 명확하게 구분하고 가는 것이 논문을 쓰는데는 효과적이겠지만 그것이 그 당시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역사연구란 당시로 돌아가 그 사회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복원하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에 무 자르듯이 잘라지지 않는다.

수많은 경계의 것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되도록이면 끝까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대항해 시대

 

주변 지인들과 하는 스터디가 있다.

주로 전공과 관련된 분야의 문헌을 보거나 논문을 읽고 공부하는 모임이다.

그러다 보니 흥미가 떨어지고 너무 한정된 분야만 다룬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시야를 넓혀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전공과 관련되지 않은 다른 시대의 책을 읽어보자고 의견이 모아져 선택한 책이 '대항해시대'이다.

우선 두껍다. 장장 600쪽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벼우며 가격도 착한 편이다.(자세한 내용은 검색해서 알아보시기 바란다)

방대한 양이지만 읽기에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아마 저자가 글을 이해하기 쉽게 부드러운 문체를 사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바다를 통해 동서양의 사람, 상품, 농작물, 생태요소, 문화 등이 서로 교류하면서 일어난 여러 역사적 현상과 그 의의를 짚어보는 책이다.

특히 콜럼버스로부터 촉발된 유럽의 신대륙에 대한 탐험과 그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상품의 교역, 이에 수반된 각종 문제들이 다양한 이론들과 더불어 여러 실례들을 들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15세기~18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촉발된 다른 지역으로의 팽창은 결국 현재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의 씨앗이 된 것이 많다.

대표적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유럽인들의 침공은 노예문제, 자연자원의 침탈문제, 전염병문제 등을 일으켰고 이것이 아직까지도 아프리카의 발목을 잡고 있다.

또한 유럽세력의 아시아로의 세력팽창 역시 아시아 스스로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외부세력에 의해 근대화가 진행되도록 하는 원인이 되었다.

아시아의 강제적인 근대화는 결국 서구자본에 종속된 현재 아시아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대부분 폭력에 의해 진행되었기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화는 결국 폭력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이해한 600여쪽에 달하는 책의 결론은 서구의 폭력에 의한 세계화가 근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현재의 문제가 결국 몇백년전에 잉태되었고 그것이 태어나고 자라서 지금에 이르게되었다는 의미로 읽혔다.

요새 신자유주의, 글로벌이라는 말이 키워드이다.

이 말들 역시 서구의 근대화과정에서 나온 말이고 개념일 것이다. 즉 서구의 관점이다.

우리가 서구에 의한 강제적인 근대화과정에서 취했었어야 하는 자세는 무엇이었고 우리는 앞으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이 방대한 책의 내용을 세세히 기억하고 전부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다만 현재 우리를 덮고 있는 문제의 시작이 역사속에 있다는 점을 다시한번 생각케한다.

 

고백하건대 이책은 최근에 읽은 것은 아니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 중에 블로그에 글을 하나 올려야겠기에 선택했다.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들춰보며 리뷰를 쓰는 것도 다시한번 책의 내용을 기억하기에는 좋은 방법일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