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흔적

 

 

 

요새 집근처에 있는 잠실 교보문고에 가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책이다.

이전부터 소문을 들어 재미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막상 엄두가 나지 않아 읽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 한가해진 틈을 타 보게 되었다.

중간중간 말도 안된다며 말하면서도 피식피식 웃게되는 책이다.

 

스웨덴의 한 요양원에서 100세 생일날 도망친 '알란 칼손'이라는 영감님의 일대기를 그린 내용이다.

학교도 거의 다니지 않은 사람이지만 수많은 우연과 자기 자신의 노력(이 영감님은 전 세계를 돌면서 많은 언어를 살기 위해 익혔다-역시 사람은 먹고 사는 문제에 봉착하면 놀라운 힘이 생기나보다.), 정치를 싫어하는 듯 하지만 기가 막히게 이용하는 능력 등을 앞세워 20세기 세계의 유명한 사람들은 다 만나고 다닌다.

미국의 트루먼대통령, 중국 국민당의 우두머리였던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모택동,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까지 근현대사를 수놓은 걸출한 인물들과 우연찮게 엮이면서 수많은 위기에서 벗어나며 전 세계를 휩쓸고 다닌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알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한 체제의 편을 들거나 싫어하거나 하지 않고 항상 중립을 지킨다는 점이다.

잘 알다시피 20세기는 거의 전 세계가 어느 한쪽 진영에 설것을 요구받았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알란은 한결같이 그와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그런 정치적인 얘기를 싫어한다고 밝히기까지 한다.

하지만 죽지 않고 갖은 수단과 여러 우연이 맞물리면서 목숨을 부지하며 100세 이후에는 요양원에서 탈출하여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정치, 사상과 전혀 연관되지 않고 심지어 그런 것들을 경멸하기까지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체제와 사상을 만든 사람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정치와 무관한 듯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어느 것 하나 정치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다.

거의 모든 것이 현실의 정치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잊고 혹은 잊으려고 노력하면서 사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삶이 정치와 깊이 연관되어 있기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똑바로 하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 정치적 힘을 위임받은 대리인들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있어 그 어느때보다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기에 이 책의 내용을 그저 웃어넘기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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