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흔적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벌써 7~8년전쯤의 일이다.

대학원 박사과정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나서 한동안 슬럼프를 겪은 적이 있다.

하고 있는 모든 일이 싫어지고 우울했었다.

더욱이 공부는 정말 하기 싫었다.

방향을 잃고 헤매이면서 마음을 못 잡고 있었던 때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어떤 경로로 이책을 보게 되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지만  다 읽고 나서 허한 마음이 어느정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아마 주인공들과 비슷한 나이또래인데다가 그동안 해왔던 일에 지겨움과 허탈함을 느낄때쯤이어서 였는지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라디오 방송국의 피디인 이건과 작가인 공진솔이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 사랑을 하고 이별을 겪고 다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이다.

주인공인 이건과 공진솔의 요란하진 않지만 가슴 두근거리는 로맨스가 예쁘게 표현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이야기에 더 감동을 받는 것 같은데 나는 건과 진솔이 그동안 해왔던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부분에 더 공감이 갔던 것 같다.

소설 속 이건의 말처럼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는 내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적당히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 느꼈을때의 부끄럽고 씁쓸한 기분...

또 라디오 작가인 진솔이 그동안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전파를 타고 날아가버린 자신의 글에 대한 아쉬움과 허탈함...

30대에 접어들어 일에 익숙해지고 나서 느끼는 감정들이 아닐까 싶다. 적당히 매너리즘에 빠진 모습...

서른이 넘으면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신이 생기고 잘할수 있을것만 같은데 꼭 그렇지 않아서 힘들었던 시기에 이 소설이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마흔을 코앞에 둔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내가 하고 있는 공부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생각중이다.

요새야 이왕 하고 있는 것 멋지게 결과물을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마음을 다잡고 있지만 그것이 결과물로 나오면 다시 한번 허탈감에 빠지게 될것이다.

그 허탈한 마음을 달래는데 건피디와 진솔의 사랑얘기와 그들의 일에 대한 생각들이 여전히 유효하기를 바라면서 책상 근처에 이 책을 두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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