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흔적

하버드 중국사 원 명

 

이 책은 고려후기 원나라와 연관있는 문제를 가지고 논문을 작성해야 해서 읽었다.

이 시리즈는 하버드를 중심으로 구미권에서 활동하는 중국사 전문 학자들이 시대별로 쓴 것으로, 모두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캐나다 출신의 티모시 브룩은 특히 명대를 연구하는 저명한 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사 놓고 읽진 못했지만 제목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능지처참>>(너머북스, 2010)이라는 책을 쓴 학자이기도 한다. 

원나라와 명나라의 역사를 다루는 이 책은 용으로 시작해서 용으로 끝난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고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상이변이 생기면 사람들이 용을 보았다고 믿는 것이다.

중세 동아시아에서 평범하지 않은 것 또는 이상한 일이 생길 것을 경고하는 지표였다.

저자는 폭넓게 중국측 기록과 구미권의 연구성과를 섭렵하여 기후변화와 왕권과의 관계를 흥미롭게 서술하였다.

기후가 어떤 방식으로 원명의 역사에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왕조의 운명을 가를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다. 

기후의 변화는 자연재해를 가져오고 왕조는 위험에 빠진다.

자연재해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이 발생한 후 극복하기 위해 왕조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그것을 집행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왕과 국가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따라 왕조의 흥망이 달라진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특히 원에서 명으로 이어지는 시기동안 극심한 자연재해 때문에 국가 전체가 늪에 빠지는 '9개의 늪' 시기가 있었고, 이것을 극복하느냐 아니면 그 늪때문에 더 어려움에 봉착하느냐가 갈렸다고 설명한다.

13세기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중국이라는 광대한 대륙의 역사를 한권의 책으로 저자의 독특하고 일관된 관점을 가지고 쓰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기후사적 관점을 꾸준히 견지하면서도 두 왕조의 행정과 제도, 경제 성장, 가족, 상업, 사상 등을 놓치지 않고 설명하고 있다.

내용이 좋은 것은 당연하고 저자의 내공에서 나오는 유려한 문체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글로 구체적으로 설득력있게 표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이렇게 하나의 줄기를 잡아가면서 그에 걸맞는 내용을 엮어서 책장이 빨리 넘어가도록 흡인력을 가진 글을 쓰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또는 글쓰기에 관심있는 사람 모두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휴면상태로 너무 오래되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글을 올려볼까 생각한다.

한 2년정도 계속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로 강의와 논문, 그밖에 자잘한 많은 일들 때문에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욕심내지 말고 일주일에 1편 정도는 올려야지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휴면상태를 해지하고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전시리뷰나 해볼까한다.

그것도 생각해보니 작년 9월에 본 전시라서 시류에는 맞지 않는다...

그래도 글감이 없으니 기억을 더듬어 쓴다.

 

 

원래 보고 싶기도 했고 마침 전시기간 중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학술대회의 토론을 맡게 되어 이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왕이 사랑한 보물>전은 18세기 독일 아우구스투스 2세가 수집하고 제작한 다양한 재질의 보물을 전시한 것이다.

강건왕이라 불렸던 아우구스투스는 궁전을 짓고 전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보물들을 소장하는 것에서 나아가 여러 재료를 활용해 당시 유럽에서 이름을 날리던 공예가들을 고용하여 직접 공예품을 만들었다.

그것도 재질별로 참으로 다양하게 제작했다.

금, 은,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같은 보석뿐만 아니라 상아, 청동, 유리, 가죽, 산호, 조개, 진주, 도자기 등 정말 다양한 재료를 활용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산호나 조개, 진주와 같은 자연에서 나온 재료를 가지고 그것을 최대한 원형을 활용하여 만든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대부분 당시에 유명했던 공예가가 만든 것들이었는데 작가의 상상력이 십분 활용되었다.

 

     

 

예술에 대한 왕의 적극적인 후원은 끊임없이 작가들의 상상력과 작품실력을 향상시켰고 획기적이고 좋은 작품들이 양산되었음을 이 전시를 통해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왕은 또한 도자기 역시 당시 유럽을 휩쓸고 있던 중국와 일본의 도자기를 수집하고 결국에는 그것을 유럽 최초로 제작하는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명 사치품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가들을 양성하고 나아가 기술혁신까지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토대에는 왕의 생각이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전시를 보면서 같은 시기 우리의 조선은 어떤 모습이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유교적 세계관때문에 '사치', '보물', '고급'이라는 것에 위정자는 알레르기가 있었고 이러한 전반적인 분위기는 공예품이나 예술에 대한 천대와 멸시로 나타나고 말았다.

분명 무분별한 사치는 경계해야 하지만  그렇게 무조건 억누르는 것, 부도덕한 것으로 매도하는 것이 진정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멋지고 화려한 보물들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은 전시였지만 반면에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서는 약간의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gt;대통령의 글쓰기&lt; (메디치, 2014.2, 강원국 저)

 

세상이 시끄럽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위정자가 하는 말을 사적으로 손대는 사람이 있었고 그것을 앵무새처럼 최고 권력자가 말했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어쩐지 이상하더라' 하는 의심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다시 대통령의 말과 글이 주목받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팟캐스트 방송에서 김대중, 노무현대통령 시절 연설비서관의 책을 알게 되었다.

워낙 저자가 재미있게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나도 글쓰기를 직업으로 갖고 있어서 더 관심이 갔다.

당장 사기는 했으나 밀린 일들이 워낙 많아서 시간내기가 어려워 이제야 읽었다.

이 책은 김대중, 노무현대통령의 연설을 중심으로 좋은 글을 쓰는 방법들을 알기 쉽게 담백한 문체로 서술했다.

좋은 글, 남을 설득하는 논리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생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은 자기 자신이 가진 콘텐츠라는 말이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분야에 대한 공부와 정리가 필요하다.

특히 지금처럼 많은 정보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는 그것을 필터링하여 정확한 정보로 매만지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자기의 콘텐츠가 생산되고 이것을 중심으로 말과 글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아무리 많고 좋다 하더라도 결국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 점을 저자는 두 대통령의 예를 적절히 들어가며 알기 쉽게 설명한다.

메모와 독서는 다시 강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중요한 것이고 글을 쓴 이후에는 그것을 계속 고치고 좋은 표현을 찾는 노력을 끝까지 해야 한다고 말한다.

두 대통령은 이것을 실천했던 사람들이었다.

주로 논문을 쓰는 내 입장에서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는 내용이었다.

글을 잘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공부한 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글로 표현하여 가장 잘 전달되도록 마지막까지 고치는 것이다.

내일 논문 수정본 제출 마감일이다.

거의 1년 이상 매달렸던 논문의 마지막 교정을 남겨두고 있다.

아마 수십번도 더 출력해서 수없이 고친 논문이다.

논리를 세우기 위해 했던 수많은 고민과 자료정리, 그리고 글을 쓰는 과정이 모두 힘들었다.

교정도 신물나게 보았다.

하지만 아직도 고칠것이 남아 있다.

내일 마지막 메일을 보내는 순간까지 고쳐야 할 것이고 그것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글이나 말을 논리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일개 논문도 이런 과정을 거쳐야 통과가 되는데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은 커녕 남이 써주는 것을 아무 생각없이 읽었다니 기가 차다.

이 책의 필자가 어떤 강연에서 말했듯이 이 사건 이후에는 아마 전반적으로 우리 국민들의 글쓰기 실력이 향상될 것 같기는 하다.

몇년전에 나온 책이지만 말도 안되는 정치적 사건때문에 재조명되고 있는 책이기도 하고 두 대통령의 글쓰기에 대한 철학과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글쓰기의 중요성 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으니 많이들 읽으시길 바란다.

 

책에서 가장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노무현대통령의 글쓰기 지침 중 하나인데, 정말 핵심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라 소개한다.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그동안 여러가지로 바쁘고 건강에도 문제가 생겨 서평이나 전시리뷰를 쓸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 결국 티스토리 관리자로부터 휴면기간이 너무 길어서 계정을 없애고 블로그를 폐쇄한다는 경고문을 받아들고 그럴수는 없어서 다시 들어와 본다.

작년 하반기에 글을 올리고는 아직까지 그대로라니...

내가 생각해도 이건 너무했다 싶다.

내가 관리자라도 확(?) 없애고 싶을 것 같다.

글쓰는 공간을 없앨수는 없으니 다시 끈을 이어가보는 의미에서 최근에 본 전시리뷰를 올린다.

 

 

 

 

오늘로 아쉽게 전시가 막을 내렸지만 최근 전시 중 가장 화제가 되었던 국립중앙박물관의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을 보고 생각했던 것들을 소개한다.

신안선은 지금으로부터 40년전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해저 침몰선으로, 중국 원나라시대인 14세기 전반에 중국 절강성 영파에서 일본 큐슈의 하카다항으로 가다가 좌초한 배다.

우연히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의 그물에 중국 용천요산 청자 1점이 걸리면서 약 10년에 걸쳐 대대적인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배를 비롯하여 중국자기, 자단목, 동전 등등 3만점 가까운 유물을 인양했다.

비록 중국에서 고려로 오는 배는 아니었지만 14세기 전반 동아시아 도자기 교역의 양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중요한 자료로 취급되어 왔다.

그동안의 전시에서는 일부 유물만 나와서 전체적인 양상을 파악하기 어려워서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작정하고 신안선에 실려 있었던 거의 대부분의 유물이 전시되어 흥미로웠다.

신안선에 실린 자기의 산지별 구성, 그릇 종류별 수량, 기타 품목의 구성과 수량 등을 파악할 수 있어서 전체적인 양상을 파악하기에 더 없이 좋은 전시였다.

개인적으로 나는 도자사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도자기가 명품이냐를 보는 것보다 전체 구성과 비율, 그리고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도자기가 생활용품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전시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14세기 전반 중국의 도자기를 수입해간 일본에서 어떻게 그것을 인식하고 사용했는지 그 의미에 대해서도 친절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용도에 대해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의 자기 뿐만 아니라 도기도 상당량이 일본으로 수출되었는데, 이것은 주로 일본에서 유행한 차문화로 인해 차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신안선에는 아주 질이 좋은 고급의 고려청자도 7점  실려 있는데, 이에 관한 해석은 다양하게 이야기되고 있다.

전시와 연계해서 열린 국제학술세미나에서 신안선의 고려청자가 중국에서 고미술품으로 유통되었던 것이 일본으로 수출된 것이라는 관점, 일본인들은 고려청자를 중국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관점 등으로 나뉘어 토론이 있었다.

물량으로 보면 고려청자는 당시의 상황에서 교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동시대 중국과 일본에서 귀한 품목으로 자리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 문제는 좀 더 다각도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신안선에 관한 이번 전시는 그동안 베일에 쌓여 있던 신안선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깊다.

물론 그것을 준비한 관계자들의 고생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수많은 유물을 수장고에서 꺼내어 정리하고 다시 전시장으로 옮긴 후에 배치하는 과정에서 흘렸을 땀방울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또 앞으로 전시가 끝나면 치뤄질 2차전의 두려움도 전시를 준비한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느낄 수 있었다.

모름지기 좋은 전시는 치열한 연구의 결과이고 직접 발로 뛰면서 준비한 관계자들의 수고로움 덕분이다.

이렇게 좋은 전시가 너무 짧게 진행되어 아쉬움을 남기지만 앞으로 신안선에서 더 나아가 당시 동아시아의 문물의 교유와 그것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불상, 간다라에서 서라벌까지'라는 제목으로 동아시아 고대불교조각대전이 열리고 있다.

석가모니 사후 600년이 지난 시점인 기원후 2세기부터 인도의 마투라와 간다라지방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불상들과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교가 전해진 후 중국에서 제작한 불상들, 그리고 삼국에 불교가 전래된 후 한반도 각지에서 제작한 불상들이 망라되어 출품되었다. 

인도의 간다라와 마투라는 서로 떨어져 있는 지역이지만 거의 동시기에 불상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석재와 불상의 특징들이 서로 다르다.

당시 인도 귀족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어진 것으로 각 지역의 색깔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후 중국 각지에서도 다양한 불상이 제작되었는데, 인도 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중국적인 특색이 녹아든 불상들이 제작되었다.

특히 중국에서는 불교가 강력환 황제의 권력을 과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통해 불교를 받아들였고 중국과 마찬가지로 왕권을 강화하는 장치로 활용되었다.

고구려와 백제는 직접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불상도 거의 비슷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그래서 고구려와 백제에서 초창기에 제작된 금동불 중 일부는 중국산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삼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각국의 특징이 드러나는 불상들을 제작하였다.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금동반가사유상이 바로 삼국시대의 것이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불교가 발생하고 불상이 처음 제작되기 시작한 인도의 불상들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전시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진 초창기의 불상들이 출품되었는데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박물관에서 대여해 왔다.

삼국의 불상들도 금동불과 석불 등 재질을 망라하여 대표작 위주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두 점의 금동반가사유상이 독립된 방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본래 두 점의 반가사유상은 1점씩 6개월을 주기로 교체전시 중이어서 두 점을 한꺼번에 보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번에 한꺼번에 두 점을 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

X-ray를 이용하여 금동불을 찍어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들을 설명하고 있는 영상물도 좋았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불상은 경북 봉화 북지리에서 출토된 석조반가사유상이었다.

현재 배 윗부분과 왼쪽 발 일부는 없지만 남아 있는 부분만으로도 무게가 2.6톤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어마아마하다.

만약 다 남아 있었다면 총 높이가 3m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크기에 압도되어 저절로 불심(佛心)이 느껴질 정도였다.

특별히 뛰어난 전시효과가 없더라도 유물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때문에 눈을 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유물 중 그러한 힘이 있는 것이 유명한 국보 금동반가사유상보다는 일부만 남아 있는 북지리 석조반가사유상이었다.

 

이번 전시는 11월 15일까지 약 두달간만 열린다.

유물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대여했기 때문에 기간이 짧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하며 사진촬영도 불가능하다.

그 점에 아쉽긴 하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인도와 중국의 불상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귀중한 전시이다.

아마 이런 전시가 다시 기획되기는 앞으로 몇십년간 어렵지 않을까한다.

시간이 되는대로 몇번 더 가서 봐야겠다.

 

 

 

 

블로그를 얼마만에 들어온 것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오늘 다시 들어와 살펴보며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되돌아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게을렀다.

그 말이 가장 적당하다.

물론 아무것도 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해야만 하는 일만 했었다.

정신차리자!!

 

오랜만에 들어온 김에 글을 하나 쓰고 하야지 하니 최근에 읽었던 책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너무 전공책만 읽었다. 주로 필요에 의해서 말이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가장 최근에 봤던 전시에 대해 올릴수 밖에 없다.

그 전시도 지난달에 본 것이긴 하지만 일단 올려본다.

 

 

다음달 초순에 전시가 끝나는 리움박물관의 <세밀가귀>전을 소개하려고 한다.

세밀가귀(細密可貴)란 고려 12세기 초반에 중국의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송나라의 서긍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흔히 고려도경으로 알려져 있다.)에서 나온 말이다.

송나라 사람인 서긍이 고려에 머물면서 봤던 공예품들 중 나전칠기를 보고 한 말로 '(고려의) 나전의 솜씨는 세밀하고 위하다고 할말하다.'를 의미한다.

고려의 공예기술이 매우 뛰어나고 화려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한국의 전통미술에 대해서는 조선시대의 전체적인 분위기인 절제되고 여백이 있으며 담백한 모습으로 대변되어 왔다.

하지만 그 이전인 고대와 고려시대는 화려함을 뽐내는 것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이번 전시는 우리 문화도 절제되고 담백한 것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화려하고 정교한 것들도 많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크게 문양의 정교함, 손으로 빚어낸 섬세한 형태, 붓으로 이룬 세밀함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유물도 도자기, 나전칠기, 금속공예품, 회화 등 재질을 불문하고 총망라되어 있다. 시기는 고려와 조선시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삼성에 소속된 박물관답게 첨단기술을 이용하여 전시품의 세부를 아주 디테일하게 볼 수 있게 구성해 놓았다.

전시된 유물은 리움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명품뿐만 아니라 국내의 다른 박물관에서 소장한 명품과 외국에서 빌려온 것들도 있다.

 

전체적으로 소주제별로 전시품의 구성은 괜찮은 편이었다.

특히 문양파트에 있었던 나전칠기들이 인상적이었다.

고려의 나전기술은 수준이 매우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작품은 그리 많지 않고 그나마 대부분 일본에 나가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에 전시된 나전칠기들은 상태도 좋고 형태나 문양면에서 매우 뛰어난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구성을 위해 큐레이터들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밖에 금속공예품이나 청자를 중심으로 한 도자기도 전시의 전체주제와 소주제별로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눈이 호강하는 전시라고 할 만하며 우리의 전통미술도 정교하고 세밀했었다는 것을 당당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권할만 하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회화파트였는데, 불화나 기록화 그리고 사경 같은 것들은 전시주제와 걸맞게 세밀가귀한 것이었지만 조선후기의 여러 회화작품들(예를 들어 정선의 금강산도와 같은)은 주제에서 빗겨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한국의 전통미술의 결정판을 모아놓은 보기 드문 전시였고 앞으로 이런 전시가 언제쯤 다시 열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시기> 시리즈는 오랜기간동안 스테티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문교양서이다.

나도 대학다닐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까지 국내를 중심으로 한 답사기만 나오다가 최근 다시 시리즈가 시작되면서 해외편이 나오고 있다.

해외편은 일본이 중심이 되는데 가장 먼저 나온 것이 규슈편이다.

규슈는 일본 중에서도 한반도와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지역으로 일찍부터 한반도와 밀접한 영향관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 한반도의 문화가 직접 전해진 곳이라는, 즉 한반도 문화가 일본보다는 우수하다는 내용을 강조할때 주로 예로 드는 곳이 규슈이다.

청동기문화에서부터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규슈를 대표하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 한반도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견해는 최근까지도 불문율처럼 한국 역사학계와 일반대중들을 지배한 하나의 이념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자료의 발견과 연구를 통해 한반도로부터의 일방적인 문화 전파가 아니라 쌍방간의 교류라는 점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저자도 일방적인 시각이 아니라 쌍방적인 시각에서 규슈의 문화를 바라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이후 한반도의 도자기와 도공들이 규슈로 대거 이동하면서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도자기문화가 꽃피게되는데, 기존의 시각이라면  조선의 우수한 도자기문화를 일본에 빼앗겼다라는가 우리가 먼저이기 때문에 무조건 우수하다라는 견해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런 면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저자는 조선도공을 우대한 일본의 정책을 통해 도공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우수한 품질의 도자기를 만들수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른바 장인을 우대하는 일본 특유의 문화의 기반위에서 비록 원천기술은 전래된 것이지만 하나의 문화로 승화시킨 것은 일본 자체의 노력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견해에 대해 나는 개인적으로 동의한다.

아무리 좋은 선진적인 문화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고 노력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그냥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현상에 머물고 말 것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면 수용을 넘어서 또다른 새로운 문화로 발전시킬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전해주는 것과 그것을 꽃피우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가치있는 것인가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데, 나는 후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많은 점에서 연구하고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것 같다.

도자기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가 우리와 달리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끊임없이 일본화시키는 그들의 저력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장점을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단순히 일본 규슈지역 중 한반도문화와 관련된 유적의 답사기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일본문화를 바라보고 그 안에 자리한 한반도의 영향관계를 해석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우리시대의 대표적인 소설가 최인호작가가 세상을 뜨신지 벌써 일년이란다.

그분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지만 작고 소식을 들었을때 안타까웠다.

이번에 1주기를 기념하여 작가가 딸과 손녀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에세이가 발간되었다는 소식에 냉큼 사게되었다.

작가의 글을 많이 접해보진 못했지만 그의 글에서 소년같은 감성이 마구 묻어나올것만 같았다.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처음 예상대로 딸과 딸이 낳은 손녀가 있는 할아버지이지만 마음만은 청춘이요 소년이었다.

하지만 딸과 손녀를 향한 사랑만큼은 그 어느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딸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과 그 딸이 낳은 딸을 보면서 느낀 할아버지로서의 생소한 기분까지 가감없이 솔직했다.

나는 딸이 없지만 만약 딸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딸에 대한 사랑이 절절했다.

이렇게 예쁜 딸과 너무나 사랑스러운 손녀를 두고 깊은 병에 걸렸던 작가는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더이상 눈앞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을때 얼마나 슬펐을까?

그러나 작가는 생전에 마음껏 딸과 손녀를 사랑하였던 것 같다.

작가의 글에서 그 마음을 느낄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야만 하는 이도,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 하는 이도 그 순간이 되면 아쉬움 뿐일 것이다.

아직 아주 가까운 사람을 잃어본 적은 없지만 이제는 조금씩 준비해야 하기에 더 이 책이 다가왔던 것 같다.

 

(구순의 할머니께서 큰 수술을 앞두고 계신다. 잘 견뎌내실거라 굳게 믿으면서도 걱정되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제발 무사하시길 이렇게 글을 써서라도 빌어야겠다.) 

 

 

이 책은 일본의 헌책 수집가이자 서평가인 저자가 자신이 가진 책이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여 일본의 대표적인 장서가들의 책수집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목조주택이 많아서 엄청난 무게의 책 때문에 집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거나 실제 무너진 사례들도 나오고 유명한 일본의 문학가들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사랑하는 물건이었던 책이 어느 순간 처치해야할 괴물이 되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시례로 들 장서가들이 어떤 연유로 책을 소장하게 되었는지 흥미진진하게 서술하고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물론 일본문학을 거의 알지 못하는지라 행간을 읽을수는 없었으나 일본의 헌책 수집의 풍경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어 흥미로웠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대도시 곳곳에 헌책방이 자리하고 있고 고정고객이 있어 헌책의 유통이 많은 편이다.

나도 우리나라의 헌책방은 별로 안가봤어도 오사카의 우메다 헌책방거리, 도쿄의 진보쵸는 가본 적이 있을 정도이다.

이처럼 헌책의 유통이 활발하다보니 장서가들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 많은 수의 책을 소장하고 있고 그에 파생된 여러가지 문제로 골치를 앓기도 하는 모양이다.

지진으로 인해 수십년간 모은 책을 한순간에 날리기도 하고 더이상 책을 앃아둘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처분하는 등 장서가들의 책에 얽힌 갖가지 사연이 재미있었다.

저자는 기존 장서가들이 책을 가짐으로써 겪은 어려움을 여러가지 예를 들어 소개하고는 결국 자신의 책을 처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 과정을 그려낸다.

서평가로서 다양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저자는 서재가 폭발 일보 직전이 되면서 제대로 글쓰기도 어려워질 정도가 되었다.

분명히 있는 책이지만 그 책을 찾을 수 없어 다시 사거나 도서관에서 빌리는 등 비효율의 정점을 찍으면서 1인 헌책방 도서판매전을 기획하게 된다.

다행히 성황리에 도서판매전이 개최되어 저자는 상당량의 책을 분양보내게 되는데 여전히 많은 책이 그의 서재에 한가득이다.

도서판매전을 기획하면서 헌책을 사랑하는 다양한 자원봉사자들을 만나게 되고 그 안에서 에피소드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결국 책이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임을 말하고 있다.  

 

우리 집에도 다른 집에 비해 책이 많은 편이다.

안팎으로 공부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탓도 있고 아이책도 필요하면 주저함 없이 사는 편인지라 이사때마다 책을 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다.

어느 시점까지는 책을 사고 모았지만 몇번의 이사를 거치면 상당량을 처분했다.

지인들을 주기도 하고 정말 과감하게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책이 많은 편이다.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책꽂이에 꽂힌 책을 찾지 못해 시간을 허비하거나 찾아놓은 자료가 섞여서 다시 출력하는 등 비효율적인 일들도 있었다.

책은 여러 사람이 읽어야 효용이 있는 것이다. 책꽂이에 꽂여만 있다면 그것은 책의 생명을 다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집에 있는 책들도 부지런히 순환시켜 꼭 필요한 사람 손에 들어가게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한창 '조선청화'에 관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며칠전 지인들과 같이 전시를 보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청화백자는 조선시대 초기부터 조선말기를 지나 현재까지도 몇백년에 걸쳐 사용된 그릇이다.

하얀 백자에 푸른빛의 청화안료를 사용하여 다양한 무늬를 장식한 청화백자는 중국에서 처음 제작되어 주변국인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무역을 통해 유럽과 아메리카, 심지어 아프리카까지 전달되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도자기이다.

특히 중국와 일본의 청화백자는 시간차를 두고 전세계를 호령한 대표적인 물질문화이다.

이에 비해 조선청화는 1차적으로 수출용 자기가 아니라 내수용 자기로, 철저히 조선인들의 사용처와 사용방법을 비롯해 미감이 반영된 다분히 '조선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출을 염두에 둔 중국과 일본의 청화백자는 어느 정도 수입국의 선호도가 반영된 반면에 조선청화는 그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의 청화백자는 야나기 무네요시가 말한 것처럼 단아하고 절제미가 있으며 여백의 미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이번 조선청화전은 이런 기존의 선입견을 깨보고자 매우 노력한 전시로 비춰질 정도로 조선의 청화백자도 이렇게 화려하다라고 뽐내는 듯 했다.

궁궐의 각종 의례에 사용된 대형의 용그림이 그려진 항아리를 전반에 배치하여 크기와 무늬에서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중반부에는 문인이 사랑한 청화백자를 통해 조선고유의 단아한 면을 부각하였다면 후반부에는 19세기 이후 다양해진 청화백자의 양상을 많은 유물을 전시함으로써 보여준다.

특히 19세기 이후 청화백자를 전시한 곳에는 벽부장을 이용하여 청화백자의 다양한 종류와 무늬를 시각적으로 구현하였다.

마지막으로 청화백자가 현재의 도예와 회화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현대작가의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조선청화백자의 다양한 면모, 화려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 전시의 목적이 있었다면 어느정도는 성공한 전시라고 본다.

그러나 일면 이렇게 다 끌어모아야만 조선청화도 나름 화려하고 괜찮았구나 하고 느낀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했다.

(중국와 일본 청화백자는 객관적으로 보았을때 그냥  화려하고 품질이 좋은 편이다)

여튼 도자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이번 전시는 조선청화의 새로운 면을 부각한 전시가 아닌가 싶다.

 

조선의 청화백자에서 대해서는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특히 전시를 보면서 잘 모르지만 19세기 일본과의 영향관계, 나아가 유럽과의 영향관계 등을 고려한 연구가 많아져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8세기까지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기종과 무늬가 급격하게 19세기에 등장하는 이유 등 풀어어할 숙제가 아직 많으니 연구가 좀 더 활발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