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흔적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시기> 시리즈는 오랜기간동안 스테티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문교양서이다.

나도 대학다닐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까지 국내를 중심으로 한 답사기만 나오다가 최근 다시 시리즈가 시작되면서 해외편이 나오고 있다.

해외편은 일본이 중심이 되는데 가장 먼저 나온 것이 규슈편이다.

규슈는 일본 중에서도 한반도와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지역으로 일찍부터 한반도와 밀접한 영향관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 한반도의 문화가 직접 전해진 곳이라는, 즉 한반도 문화가 일본보다는 우수하다는 내용을 강조할때 주로 예로 드는 곳이 규슈이다.

청동기문화에서부터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규슈를 대표하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 한반도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견해는 최근까지도 불문율처럼 한국 역사학계와 일반대중들을 지배한 하나의 이념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자료의 발견과 연구를 통해 한반도로부터의 일방적인 문화 전파가 아니라 쌍방간의 교류라는 점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저자도 일방적인 시각이 아니라 쌍방적인 시각에서 규슈의 문화를 바라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이후 한반도의 도자기와 도공들이 규슈로 대거 이동하면서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도자기문화가 꽃피게되는데, 기존의 시각이라면  조선의 우수한 도자기문화를 일본에 빼앗겼다라는가 우리가 먼저이기 때문에 무조건 우수하다라는 견해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런 면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저자는 조선도공을 우대한 일본의 정책을 통해 도공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우수한 품질의 도자기를 만들수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른바 장인을 우대하는 일본 특유의 문화의 기반위에서 비록 원천기술은 전래된 것이지만 하나의 문화로 승화시킨 것은 일본 자체의 노력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견해에 대해 나는 개인적으로 동의한다.

아무리 좋은 선진적인 문화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고 노력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그냥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현상에 머물고 말 것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면 수용을 넘어서 또다른 새로운 문화로 발전시킬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전해주는 것과 그것을 꽃피우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가치있는 것인가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데, 나는 후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많은 점에서 연구하고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것 같다.

도자기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가 우리와 달리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끊임없이 일본화시키는 그들의 저력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장점을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단순히 일본 규슈지역 중 한반도문화와 관련된 유적의 답사기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일본문화를 바라보고 그 안에 자리한 한반도의 영향관계를 해석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