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흔적

휴면상태로 너무 오래되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글을 올려볼까 생각한다.

한 2년정도 계속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로 강의와 논문, 그밖에 자잘한 많은 일들 때문에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욕심내지 말고 일주일에 1편 정도는 올려야지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휴면상태를 해지하고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전시리뷰나 해볼까한다.

그것도 생각해보니 작년 9월에 본 전시라서 시류에는 맞지 않는다...

그래도 글감이 없으니 기억을 더듬어 쓴다.

 

 

원래 보고 싶기도 했고 마침 전시기간 중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학술대회의 토론을 맡게 되어 이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왕이 사랑한 보물>전은 18세기 독일 아우구스투스 2세가 수집하고 제작한 다양한 재질의 보물을 전시한 것이다.

강건왕이라 불렸던 아우구스투스는 궁전을 짓고 전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보물들을 소장하는 것에서 나아가 여러 재료를 활용해 당시 유럽에서 이름을 날리던 공예가들을 고용하여 직접 공예품을 만들었다.

그것도 재질별로 참으로 다양하게 제작했다.

금, 은,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같은 보석뿐만 아니라 상아, 청동, 유리, 가죽, 산호, 조개, 진주, 도자기 등 정말 다양한 재료를 활용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산호나 조개, 진주와 같은 자연에서 나온 재료를 가지고 그것을 최대한 원형을 활용하여 만든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대부분 당시에 유명했던 공예가가 만든 것들이었는데 작가의 상상력이 십분 활용되었다.

 

     

 

예술에 대한 왕의 적극적인 후원은 끊임없이 작가들의 상상력과 작품실력을 향상시켰고 획기적이고 좋은 작품들이 양산되었음을 이 전시를 통해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왕은 또한 도자기 역시 당시 유럽을 휩쓸고 있던 중국와 일본의 도자기를 수집하고 결국에는 그것을 유럽 최초로 제작하는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명 사치품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가들을 양성하고 나아가 기술혁신까지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토대에는 왕의 생각이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전시를 보면서 같은 시기 우리의 조선은 어떤 모습이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유교적 세계관때문에 '사치', '보물', '고급'이라는 것에 위정자는 알레르기가 있었고 이러한 전반적인 분위기는 공예품이나 예술에 대한 천대와 멸시로 나타나고 말았다.

분명 무분별한 사치는 경계해야 하지만  그렇게 무조건 억누르는 것, 부도덕한 것으로 매도하는 것이 진정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멋지고 화려한 보물들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은 전시였지만 반면에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서는 약간의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동안 여러가지로 바쁘고 건강에도 문제가 생겨 서평이나 전시리뷰를 쓸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 결국 티스토리 관리자로부터 휴면기간이 너무 길어서 계정을 없애고 블로그를 폐쇄한다는 경고문을 받아들고 그럴수는 없어서 다시 들어와 본다.

작년 하반기에 글을 올리고는 아직까지 그대로라니...

내가 생각해도 이건 너무했다 싶다.

내가 관리자라도 확(?) 없애고 싶을 것 같다.

글쓰는 공간을 없앨수는 없으니 다시 끈을 이어가보는 의미에서 최근에 본 전시리뷰를 올린다.

 

 

 

 

오늘로 아쉽게 전시가 막을 내렸지만 최근 전시 중 가장 화제가 되었던 국립중앙박물관의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을 보고 생각했던 것들을 소개한다.

신안선은 지금으로부터 40년전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해저 침몰선으로, 중국 원나라시대인 14세기 전반에 중국 절강성 영파에서 일본 큐슈의 하카다항으로 가다가 좌초한 배다.

우연히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의 그물에 중국 용천요산 청자 1점이 걸리면서 약 10년에 걸쳐 대대적인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배를 비롯하여 중국자기, 자단목, 동전 등등 3만점 가까운 유물을 인양했다.

비록 중국에서 고려로 오는 배는 아니었지만 14세기 전반 동아시아 도자기 교역의 양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중요한 자료로 취급되어 왔다.

그동안의 전시에서는 일부 유물만 나와서 전체적인 양상을 파악하기 어려워서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작정하고 신안선에 실려 있었던 거의 대부분의 유물이 전시되어 흥미로웠다.

신안선에 실린 자기의 산지별 구성, 그릇 종류별 수량, 기타 품목의 구성과 수량 등을 파악할 수 있어서 전체적인 양상을 파악하기에 더 없이 좋은 전시였다.

개인적으로 나는 도자사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도자기가 명품이냐를 보는 것보다 전체 구성과 비율, 그리고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도자기가 생활용품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전시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14세기 전반 중국의 도자기를 수입해간 일본에서 어떻게 그것을 인식하고 사용했는지 그 의미에 대해서도 친절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용도에 대해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의 자기 뿐만 아니라 도기도 상당량이 일본으로 수출되었는데, 이것은 주로 일본에서 유행한 차문화로 인해 차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신안선에는 아주 질이 좋은 고급의 고려청자도 7점  실려 있는데, 이에 관한 해석은 다양하게 이야기되고 있다.

전시와 연계해서 열린 국제학술세미나에서 신안선의 고려청자가 중국에서 고미술품으로 유통되었던 것이 일본으로 수출된 것이라는 관점, 일본인들은 고려청자를 중국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관점 등으로 나뉘어 토론이 있었다.

물량으로 보면 고려청자는 당시의 상황에서 교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동시대 중국과 일본에서 귀한 품목으로 자리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 문제는 좀 더 다각도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신안선에 관한 이번 전시는 그동안 베일에 쌓여 있던 신안선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깊다.

물론 그것을 준비한 관계자들의 고생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수많은 유물을 수장고에서 꺼내어 정리하고 다시 전시장으로 옮긴 후에 배치하는 과정에서 흘렸을 땀방울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또 앞으로 전시가 끝나면 치뤄질 2차전의 두려움도 전시를 준비한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느낄 수 있었다.

모름지기 좋은 전시는 치열한 연구의 결과이고 직접 발로 뛰면서 준비한 관계자들의 수고로움 덕분이다.

이렇게 좋은 전시가 너무 짧게 진행되어 아쉬움을 남기지만 앞으로 신안선에서 더 나아가 당시 동아시아의 문물의 교유와 그것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불상, 간다라에서 서라벌까지'라는 제목으로 동아시아 고대불교조각대전이 열리고 있다.

석가모니 사후 600년이 지난 시점인 기원후 2세기부터 인도의 마투라와 간다라지방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불상들과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교가 전해진 후 중국에서 제작한 불상들, 그리고 삼국에 불교가 전래된 후 한반도 각지에서 제작한 불상들이 망라되어 출품되었다. 

인도의 간다라와 마투라는 서로 떨어져 있는 지역이지만 거의 동시기에 불상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석재와 불상의 특징들이 서로 다르다.

당시 인도 귀족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어진 것으로 각 지역의 색깔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후 중국 각지에서도 다양한 불상이 제작되었는데, 인도 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중국적인 특색이 녹아든 불상들이 제작되었다.

특히 중국에서는 불교가 강력환 황제의 권력을 과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통해 불교를 받아들였고 중국과 마찬가지로 왕권을 강화하는 장치로 활용되었다.

고구려와 백제는 직접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불상도 거의 비슷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그래서 고구려와 백제에서 초창기에 제작된 금동불 중 일부는 중국산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삼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각국의 특징이 드러나는 불상들을 제작하였다.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금동반가사유상이 바로 삼국시대의 것이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불교가 발생하고 불상이 처음 제작되기 시작한 인도의 불상들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전시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진 초창기의 불상들이 출품되었는데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박물관에서 대여해 왔다.

삼국의 불상들도 금동불과 석불 등 재질을 망라하여 대표작 위주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두 점의 금동반가사유상이 독립된 방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본래 두 점의 반가사유상은 1점씩 6개월을 주기로 교체전시 중이어서 두 점을 한꺼번에 보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번에 한꺼번에 두 점을 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

X-ray를 이용하여 금동불을 찍어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들을 설명하고 있는 영상물도 좋았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불상은 경북 봉화 북지리에서 출토된 석조반가사유상이었다.

현재 배 윗부분과 왼쪽 발 일부는 없지만 남아 있는 부분만으로도 무게가 2.6톤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어마아마하다.

만약 다 남아 있었다면 총 높이가 3m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크기에 압도되어 저절로 불심(佛心)이 느껴질 정도였다.

특별히 뛰어난 전시효과가 없더라도 유물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때문에 눈을 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유물 중 그러한 힘이 있는 것이 유명한 국보 금동반가사유상보다는 일부만 남아 있는 북지리 석조반가사유상이었다.

 

이번 전시는 11월 15일까지 약 두달간만 열린다.

유물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대여했기 때문에 기간이 짧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하며 사진촬영도 불가능하다.

그 점에 아쉽긴 하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인도와 중국의 불상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귀중한 전시이다.

아마 이런 전시가 다시 기획되기는 앞으로 몇십년간 어렵지 않을까한다.

시간이 되는대로 몇번 더 가서 봐야겠다.

 

 

 

 

블로그를 얼마만에 들어온 것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오늘 다시 들어와 살펴보며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되돌아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게을렀다.

그 말이 가장 적당하다.

물론 아무것도 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해야만 하는 일만 했었다.

정신차리자!!

 

오랜만에 들어온 김에 글을 하나 쓰고 하야지 하니 최근에 읽었던 책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너무 전공책만 읽었다. 주로 필요에 의해서 말이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가장 최근에 봤던 전시에 대해 올릴수 밖에 없다.

그 전시도 지난달에 본 것이긴 하지만 일단 올려본다.

 

 

다음달 초순에 전시가 끝나는 리움박물관의 <세밀가귀>전을 소개하려고 한다.

세밀가귀(細密可貴)란 고려 12세기 초반에 중국의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송나라의 서긍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흔히 고려도경으로 알려져 있다.)에서 나온 말이다.

송나라 사람인 서긍이 고려에 머물면서 봤던 공예품들 중 나전칠기를 보고 한 말로 '(고려의) 나전의 솜씨는 세밀하고 위하다고 할말하다.'를 의미한다.

고려의 공예기술이 매우 뛰어나고 화려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한국의 전통미술에 대해서는 조선시대의 전체적인 분위기인 절제되고 여백이 있으며 담백한 모습으로 대변되어 왔다.

하지만 그 이전인 고대와 고려시대는 화려함을 뽐내는 것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이번 전시는 우리 문화도 절제되고 담백한 것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화려하고 정교한 것들도 많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크게 문양의 정교함, 손으로 빚어낸 섬세한 형태, 붓으로 이룬 세밀함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유물도 도자기, 나전칠기, 금속공예품, 회화 등 재질을 불문하고 총망라되어 있다. 시기는 고려와 조선시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삼성에 소속된 박물관답게 첨단기술을 이용하여 전시품의 세부를 아주 디테일하게 볼 수 있게 구성해 놓았다.

전시된 유물은 리움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명품뿐만 아니라 국내의 다른 박물관에서 소장한 명품과 외국에서 빌려온 것들도 있다.

 

전체적으로 소주제별로 전시품의 구성은 괜찮은 편이었다.

특히 문양파트에 있었던 나전칠기들이 인상적이었다.

고려의 나전기술은 수준이 매우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작품은 그리 많지 않고 그나마 대부분 일본에 나가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에 전시된 나전칠기들은 상태도 좋고 형태나 문양면에서 매우 뛰어난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구성을 위해 큐레이터들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밖에 금속공예품이나 청자를 중심으로 한 도자기도 전시의 전체주제와 소주제별로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눈이 호강하는 전시라고 할 만하며 우리의 전통미술도 정교하고 세밀했었다는 것을 당당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권할만 하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회화파트였는데, 불화나 기록화 그리고 사경 같은 것들은 전시주제와 걸맞게 세밀가귀한 것이었지만 조선후기의 여러 회화작품들(예를 들어 정선의 금강산도와 같은)은 주제에서 빗겨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한국의 전통미술의 결정판을 모아놓은 보기 드문 전시였고 앞으로 이런 전시가 언제쯤 다시 열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한창 '조선청화'에 관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며칠전 지인들과 같이 전시를 보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청화백자는 조선시대 초기부터 조선말기를 지나 현재까지도 몇백년에 걸쳐 사용된 그릇이다.

하얀 백자에 푸른빛의 청화안료를 사용하여 다양한 무늬를 장식한 청화백자는 중국에서 처음 제작되어 주변국인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무역을 통해 유럽과 아메리카, 심지어 아프리카까지 전달되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도자기이다.

특히 중국와 일본의 청화백자는 시간차를 두고 전세계를 호령한 대표적인 물질문화이다.

이에 비해 조선청화는 1차적으로 수출용 자기가 아니라 내수용 자기로, 철저히 조선인들의 사용처와 사용방법을 비롯해 미감이 반영된 다분히 '조선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출을 염두에 둔 중국과 일본의 청화백자는 어느 정도 수입국의 선호도가 반영된 반면에 조선청화는 그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의 청화백자는 야나기 무네요시가 말한 것처럼 단아하고 절제미가 있으며 여백의 미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이번 조선청화전은 이런 기존의 선입견을 깨보고자 매우 노력한 전시로 비춰질 정도로 조선의 청화백자도 이렇게 화려하다라고 뽐내는 듯 했다.

궁궐의 각종 의례에 사용된 대형의 용그림이 그려진 항아리를 전반에 배치하여 크기와 무늬에서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중반부에는 문인이 사랑한 청화백자를 통해 조선고유의 단아한 면을 부각하였다면 후반부에는 19세기 이후 다양해진 청화백자의 양상을 많은 유물을 전시함으로써 보여준다.

특히 19세기 이후 청화백자를 전시한 곳에는 벽부장을 이용하여 청화백자의 다양한 종류와 무늬를 시각적으로 구현하였다.

마지막으로 청화백자가 현재의 도예와 회화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현대작가의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조선청화백자의 다양한 면모, 화려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 전시의 목적이 있었다면 어느정도는 성공한 전시라고 본다.

그러나 일면 이렇게 다 끌어모아야만 조선청화도 나름 화려하고 괜찮았구나 하고 느낀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했다.

(중국와 일본 청화백자는 객관적으로 보았을때 그냥  화려하고 품질이 좋은 편이다)

여튼 도자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이번 전시는 조선청화의 새로운 면을 부각한 전시가 아닌가 싶다.

 

조선의 청화백자에서 대해서는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특히 전시를 보면서 잘 모르지만 19세기 일본과의 영향관계, 나아가 유럽과의 영향관계 등을 고려한 연구가 많아져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8세기까지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기종과 무늬가 급격하게 19세기에 등장하는 이유 등 풀어어할 숙제가 아직 많으니 연구가 좀 더 활발해졌으면 한다.

 

 

 

 

  

 

그동안 논문때문에 여유롭게 전시를 보거나 한가롭게 책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논문제출의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 책과 전시를 조금은 즐기면서 보고 있다.

물론 이 여유로움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지난 토요일 오후 집에 있기에는 너무 덥기도 하거니와 좋은 전시도 있어서 오랜만에 경복궁에 있는 고궁박물관에 다녀왔다.

아이와 같이 가려고 하였으나 박물관을 싫어하는지라 혼자 다녀오게 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조선왕실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상설전과 함께 종묘전이 열리고 있었다.(아쉽게도 8월 3일자로 종료되었다.)

 

'종묘'전은선왕실에서의 종묘의 성격과 위치, 그리고 그것의 함축하고 있는 의미들을 여러 주제로 나누어 설명한 전시이다.

종묘의 역사와 건축에 관한 것에서부터 종묘 제향과 제기, 제례악과 같은 의례에 관한 내용까지 최근에 본 전시 중 가장 알찬 구성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종묘 제향에 사용된 여러 종류의 제기들의 전시가 눈길을 끌었다.

제향을 구성하는 제기가 어떤 종류인지 그리고 어떻게 상을 차렸는지 재현한 부분은 마치 실제로 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이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종묘의 제기를 보관하던 장소를 그대로 보여준 부분이었다.

제기고라 불리는 이 장소는 종묘에서 치뤄지는 각종 제향에 사용하는 그릇을 보관하던 곳으로 차곡차곡 그릇을 정리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종묘는 유교의 법도와 예의를 지킴으로써 국가와 왕실의 정통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조선의 모습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좋은 테마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테마라도 그것을 제대로 엮어놓지 못하고 구성이 허술하면 그저그런 전시가 되고 만다.

그러나 이번의 국립고궁박물관 종묘전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좋은 테마에 적절한 구성이 어우러진 간만에 볼만한 전시가 아니었나 싶다.

적절한 유물 선정과 수량을 조정하여 포인트를 줘야할 곳과 힘을 빼야 할 곳이 적당이 섞여 있어 보는 입장에서 힘들지 않으면서도 요약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전시를 구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과 있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기에 더 흥미러웠다. 

 

 

 

아이 친구 엄마 덕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하는 "세계팝업아트전"을 다녀왔다.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무척 많았다.

많은 사람들 틈 바구니에서 다양한 팝업아트를 볼 수 있었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흥미롭게 전시를 관람하는 것 같았다.

아이가 어릴때 종종 사주었던 책 중에 책장을 펼치면 공룡이나 동물이 튀어나오는 것을 어른인 나도 매우 신기했다.

아마 내가 어릴때는 이런 책이 많지 않아서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아이들의 책에 포함된 팝업뿐만 아니라 하나의 완벽한 장르로써의 팝업이 많이 소개되어 있었다.

세밀하게 잘라서 만든 도시의 모습, 미래의 모습, 여러 모빌들, 동화속 풍경, 여러 기하학적인 문양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했다.  

아주 정밀하고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작업과정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 같은 작품들이었다.

이것을 만들기 위해 작가들이 얼마나 머리를 쓰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민하고 정성을 들여 만들었는지 작품마다 다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나같이 손재주가 없는 사람은 이렇게 손으로 정성들여 만든 것에 대한 로망이 있다.

아마 내 손에서는 탄생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더 그럴 것이다.

여튼 같이간 아이는 대충 보는 것 같았지만 나는 간만에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 것 같아서 좋았다.

아쉽게도 이젠 전시가 종료되어 더이상 볼 수 없지만 나중에 이런 전시가 있으면 꼭 다시 가봐야겠다.

 

지금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금은보화전-한국전통공예의 미"를 하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근대기까지 유물 중 화려하고 뛰어난 미술품을 모아서 하는 전시이다.

신라시대 금관부터 고려시대 은제 주전자와 조선시대 장신구, 근대기 화병까지 다양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도록에서만 봤던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 <은제도금 주자 및 승반>도 볼 수 있었고, 청자에 금박을 입힌 <청자상감 화금당초문 접시>도 전시되었다.

삼성에서 만든 미술관인 만큼 전시설명 역시 스마트(?)했다.

유물앞에 서면 자동으로 설명이 나오고 해당 유물의 사진을 확대해 볼 수 있는 개인 단말기가 인상적이었다.

또 중요 유물은 화면을 통해서 360도 회전해볼 수 있고 확대해 볼 수 있었다.

기존 우리나라 박물관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기술들이 적용되어 신선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예 전시장 자체가 돌아가서 유물을 실제로 360도 회전하여 볼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외국 박물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니 우리나라라고 하지 못할리 없으니 조만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번 전시의 유물은 당시의 최고급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 분명한 것만을 모아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유물의 양이 많지 않았지만 하나하나 자세히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유물을 선정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종종 전시들을 보면 너무 많이 보여주고자 하여 전시품이 많아지고 결국 하이라이트가 없어서 뭘 봤는지 인상적이지 못할때가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적절히 조정하여 과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기본적으로 한국은 은은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조선을 거치면서 생긴 것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교육을 받은 우리들은 우리의 문화가 소박하고 질박하며 단순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리움의 전시를 보면서, 또 강의를 하면서 장시간에 걸쳐 생각을 해보니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물질문화를 살펴보면 우리가 그리 소박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특히 고려시대는 금속공예를 비롯하여 청자가 매우 화려한데, 소박하다고 생각해온 우리 문화가 화려함도 뒤지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하나의 잣대로 규정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일 것이다.(기존에는 이런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물질문화는 시대별로 다양한 면모를 보이며, 한 시대 안에서도 분야에 따라 많은 모습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동안 소박함만을 강조해온 전통공예가 화려한 면모도 상당부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임팩트있게 보여주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되면 다시 한번 가서 봐야겠다.

 

(나는 전시를 볼때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도록도 워낙 잘 나오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사진을 찍다 보면 정작 유물을 자세히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로그에 올릴 전시사진이 없는 단점이 생겨버렸다. 앞으로는 많이는 아니더라도 몇장이라도 찍도록 해봐야겠다.)

 

  

오늘 아이와 함께 국립과천과학관을 다녀왔다.

 

얼마전부터 대체에네지와 소재에 관심을 갖더니 전에 가본적이 있는 과천과학관이 떠 올랐나보다.

 

방학이라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본격적으로 전시를 보기 전부터 기가 뺏기는 기분이었다.

 

박물관이나 기타 여러 전시장은 들어가면 일단 기가 뺏기는 기분이 든다.

 

규모도 크거니와 이걸 언제 다 보나하는 마음이 들어서일게다.

1, 2층의 규모에 다양한 전시가 펼쳐져 있는 과학관을 모두 보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했기에 지금 현재 관심을 갖고 있는 곳 몇 곳만 둘러보기로 했다.

 

기계와 우주 및 여러 기술이 전시되어 있는 첨단기술관과 저번에 와서 못 본 전통과학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이가 요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에너지 부분에서는 패널도 꼼꼼히 보고 흥미있어 했다.

 

소재부분에 관한 전시가 별로 없어서 그 부분이 아쉽긴 하지만 그런대로 오늘 전시관람은 괜찮았다.

 

국립과천과학관은 규모도 규모지만 전시의 양이 매우 많은 것이 특징이다.

 

한 전시실안에 A부터 Z까지 다 있다 보니 나중에는 특별히 기억하는 것이 없게 되어 버리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첨단기술에 관한 부분에서는 에너지, 항공, 우주 등등 여러 테마가 같이 들어가 있어 정신이 없었다.

 

공간 구획상 따로따로 전시실을 꾸미기가 쉽지 않겠지만 어느정도 구별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전시물의 크기가 크다보니 전시물을 따라가는 동선도 섞이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이곳 뿐만 아니라 규모가 큰 박물관(예를 들어 국립중앙박물관)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 전시규모가 크고 양이 많은 곳은 하루에 다 보는 것은 정말 무리이다.

 

몇곳만 선택해서 보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다.

 

어른인 나도 기억이 다 안나는데 애들은 말해 무엇하랴.

 

1시간 반 정도 전시를 봤는데 기운이 쏙 빠져서 집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고 날씨가 풀리면 야외에 있는 전시물만 보러 따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