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흔적

그동안 논문때문에 여유롭게 전시를 보거나 한가롭게 책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논문제출의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 책과 전시를 조금은 즐기면서 보고 있다.

물론 이 여유로움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지난 토요일 오후 집에 있기에는 너무 덥기도 하거니와 좋은 전시도 있어서 오랜만에 경복궁에 있는 고궁박물관에 다녀왔다.

아이와 같이 가려고 하였으나 박물관을 싫어하는지라 혼자 다녀오게 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조선왕실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상설전과 함께 종묘전이 열리고 있었다.(아쉽게도 8월 3일자로 종료되었다.)

 

'종묘'전은선왕실에서의 종묘의 성격과 위치, 그리고 그것의 함축하고 있는 의미들을 여러 주제로 나누어 설명한 전시이다.

종묘의 역사와 건축에 관한 것에서부터 종묘 제향과 제기, 제례악과 같은 의례에 관한 내용까지 최근에 본 전시 중 가장 알찬 구성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종묘 제향에 사용된 여러 종류의 제기들의 전시가 눈길을 끌었다.

제향을 구성하는 제기가 어떤 종류인지 그리고 어떻게 상을 차렸는지 재현한 부분은 마치 실제로 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이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종묘의 제기를 보관하던 장소를 그대로 보여준 부분이었다.

제기고라 불리는 이 장소는 종묘에서 치뤄지는 각종 제향에 사용하는 그릇을 보관하던 곳으로 차곡차곡 그릇을 정리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종묘는 유교의 법도와 예의를 지킴으로써 국가와 왕실의 정통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조선의 모습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좋은 테마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테마라도 그것을 제대로 엮어놓지 못하고 구성이 허술하면 그저그런 전시가 되고 만다.

그러나 이번의 국립고궁박물관 종묘전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좋은 테마에 적절한 구성이 어우러진 간만에 볼만한 전시가 아니었나 싶다.

적절한 유물 선정과 수량을 조정하여 포인트를 줘야할 곳과 힘을 빼야 할 곳이 적당이 섞여 있어 보는 입장에서 힘들지 않으면서도 요약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전시를 구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과 있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기에 더 흥미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