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흔적

블로그를 얼마만에 들어온 것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오늘 다시 들어와 살펴보며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되돌아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게을렀다.

그 말이 가장 적당하다.

물론 아무것도 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해야만 하는 일만 했었다.

정신차리자!!

 

오랜만에 들어온 김에 글을 하나 쓰고 하야지 하니 최근에 읽었던 책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너무 전공책만 읽었다. 주로 필요에 의해서 말이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가장 최근에 봤던 전시에 대해 올릴수 밖에 없다.

그 전시도 지난달에 본 것이긴 하지만 일단 올려본다.

 

 

다음달 초순에 전시가 끝나는 리움박물관의 <세밀가귀>전을 소개하려고 한다.

세밀가귀(細密可貴)란 고려 12세기 초반에 중국의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송나라의 서긍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흔히 고려도경으로 알려져 있다.)에서 나온 말이다.

송나라 사람인 서긍이 고려에 머물면서 봤던 공예품들 중 나전칠기를 보고 한 말로 '(고려의) 나전의 솜씨는 세밀하고 위하다고 할말하다.'를 의미한다.

고려의 공예기술이 매우 뛰어나고 화려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한국의 전통미술에 대해서는 조선시대의 전체적인 분위기인 절제되고 여백이 있으며 담백한 모습으로 대변되어 왔다.

하지만 그 이전인 고대와 고려시대는 화려함을 뽐내는 것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이번 전시는 우리 문화도 절제되고 담백한 것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화려하고 정교한 것들도 많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크게 문양의 정교함, 손으로 빚어낸 섬세한 형태, 붓으로 이룬 세밀함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유물도 도자기, 나전칠기, 금속공예품, 회화 등 재질을 불문하고 총망라되어 있다. 시기는 고려와 조선시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삼성에 소속된 박물관답게 첨단기술을 이용하여 전시품의 세부를 아주 디테일하게 볼 수 있게 구성해 놓았다.

전시된 유물은 리움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명품뿐만 아니라 국내의 다른 박물관에서 소장한 명품과 외국에서 빌려온 것들도 있다.

 

전체적으로 소주제별로 전시품의 구성은 괜찮은 편이었다.

특히 문양파트에 있었던 나전칠기들이 인상적이었다.

고려의 나전기술은 수준이 매우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작품은 그리 많지 않고 그나마 대부분 일본에 나가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에 전시된 나전칠기들은 상태도 좋고 형태나 문양면에서 매우 뛰어난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구성을 위해 큐레이터들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밖에 금속공예품이나 청자를 중심으로 한 도자기도 전시의 전체주제와 소주제별로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눈이 호강하는 전시라고 할 만하며 우리의 전통미술도 정교하고 세밀했었다는 것을 당당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권할만 하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회화파트였는데, 불화나 기록화 그리고 사경 같은 것들은 전시주제와 걸맞게 세밀가귀한 것이었지만 조선후기의 여러 회화작품들(예를 들어 정선의 금강산도와 같은)은 주제에서 빗겨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한국의 전통미술의 결정판을 모아놓은 보기 드문 전시였고 앞으로 이런 전시가 언제쯤 다시 열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