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흔적

나라의 정화 조선의 표상

 

학부강의를 듣는 학생들 중 교생실습때문에 시험을 보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다.

때문에 시험대신에 과제를 내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나라의 정화, 조선의 표상 일제강점기 석굴암론'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이다.

중간고사 범위가 통일신라시대까지였으므로 석굴암에 대해서 깊이있게 이해하는 것도 좋을듯 싶었다.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었으니 선생은 책을 정성껏(?) 읽는 것이 당연하다.

간만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펜으로 줄을 치고 군데군데 느낀점이나 생각하는 바를 적다가 어느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너무나 화려하게 책 읽은 티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정성껏 읽었다.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었기에 아깝지만 도서관에는 새책을 사서 갖다주어야 할 것같다.

출간한지 오래된 책이면 그냥 눈감고 넘어가려 했는데 학교에서 구입한지 2달도 안 된 책이니 그러기에는 너무 양심에 찔린다.

여하튼 이 책은 내용을 떠나서 나에게 에피소드를 남긴 책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왜 석굴암을 '우리민족의 자랑' 혹은 '동양 최고의 예술품'으로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까에 의문을 품고 그러한 생각이 시작된 원인을 찾아보고자 했다.

언제부터 석굴암을 그렇게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왜 우리는 석굴암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동안 너무나 당연한 사실로만 인식하고 있었음에 화들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어렸을때부터 학교에서, 방송에서, 책에서 막연히 그렇게 이야기 했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저자는 석굴암이 우리에게 처음으로 민족문화의 정수로 알려지고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일본 학자들에 의해서 였다는 점을 여러 자료를 예시로 들며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의 역사와 문화재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하는 작업을 매우 광범위하게 하였다.

일제가 그렇게 했던 것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 제국주의가 확산되고 서구 열강들이 아프리카나 동양 등을 식민지화 하는 과정에서 식민지 자체의 방치된 역사와 유적을 다시 '재발견'하는 것이 유행하였기 때문이다.

식민지배를 받는 국가들은 근대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찬란했던 과거의 역사와 문화유적을 발견하지도 못하고 그것을 연구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어야 했다.

앙코르와트나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드르가 대표적인 예이다.

동양의 서구열강을 자처한 일본 역시 자신들이 식민지로 삼고자 하는 조선의 예전 영화로운 문화가 일본에 의해 발견되고 재해석하고자 하는 생각이 강했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때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조선에서는 석굴암이 제시되었다.

일제는 조선인에 의해 방치되었던 석굴암을 일본 우편배달부가 발견하여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자신들의 문화조차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당시의 조선을 한없이 우스운 존재로 만드는 것이었다.

특히 석굴암은 일본학자들에 의해 한국미술의 절정기로 평가받는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선의 가장 찬란한 시기의 문화재를 일본의 손으로 찾고 일본의 돈을 들여 수리까지 하는 등 그것을 만들었던 주체는 완전히 사라지고 그것을 발견한 사실만이 부각되고 말았다.

일제강점기동안 석굴암은 철저히 일본인이 바라보는 대로 조선인들에게도 그대로 인식되었고 결국에는 철저히 관광상품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석굴암의 본래 조성목적이나 기능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그저 문화재로써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도 그러한 시선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는데, 물론 여러 자료와 수업을 통해 석굴암이 지나치게 포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는 줄은 몰랐다.

석굴암은 본래 예배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냥 가서 보고 본존불이 크구나, 조각들이 멋있구나 느끼라고 신라사람들이 고생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라도 석굴암에 덧씌어진 여러 시선에서 자유로워져 있는 그대로의 석굴암, 만들었던 당시의 석굴암, 그것을 계속 지켜봐았던 사람들의 석굴암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렇게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된 것이 석굴암 뿐이겠는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역사와 문화재가 일제를 거치며 상당부분 이상하게 왜곡되는 현상을 거쳤다.

이제는 덧칠된 것을 벗겨내고 본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절실한 때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