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흔적

지대물박

 

'地大物博'. '땅은 크고 문물은 넓다'

직역하면 이런 뜻이다.

중국의 넓은 땅과 그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여러 문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음을 나타내는 의미이다.

얼마나 그 땅안에, 그 사람들이, 그 문물이 다양하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한반도처럼 작은 땅에서도 지역이 나뉘고 그에 따라 지역색이 분명한 문화가 있음을 볼때 중국은 어떠할지 상상하기조차 힘들지 모른다.

 

이 책은 중국에서 중국미술사를 전공한 미술사학자에 의해 씌여진 책이다.

따라서 각 주제마다 깊이도 있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중국유학을 마치고 막 한국에 오셨을때 대학원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중국미술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최신 자료를 이용해 강의를 진행하셔서 인상깊은 수업 중 하나였다.

물론 학생들이 못 알아듣거나 너무 아는 것이 없어서 실망하셨던(?) 적도 많으셨다.

듣는 학생들이야 흥미로웠지만 강의하는 입장에서는 많이 답답하셨으리라.

 

신문에 소개된 글을 읽고 바로 구입해서 읽게 되었는데 예전에 수업때 강조하시거나 주제로 삼았던 내용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어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중국미술사를 각각의 주제별로 하면서도 큰 줄기는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먼저 선사와 고대에 해당하는 옥기와 청동기를 비롯하여 수많은 유물이 발견된 진시황릉에 대해 다루고 있다.

또한 자금성의 구성을 통해 중국인의 천하관을 살펴보고 있으며, 북경에 위치한 천단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그 성격이 바뀌었는지 설명하였다.

사방이 막힌 중국의 주거문화의 대표적인 특징인 사합원과 건축기술의 발전과 가구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살피고 있다.

이외에도 북제시대 황제의 석굴인 북향당석굴과 중국 회화를 읽는 방법, 길상을 추구하는 중국의 공예 등에 대해 비교적 알기 쉽게 서술하였다.

중국미술이야 그 양과 질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방대하고 다양하다.

그 내용을 다 알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 책을 통해서 중국미술사의 맛보기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이중에서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북향당석굴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북항댱석굴은 중국 하북성 자현에 있는데, 고산의 중턱에 있다.

북제의 문선제의 무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북동을 비롯해, 중동, 남동 3개로 구성되어 있다.

황제가 직접 건설에 관여한 석굴로 황제의 권위를 부처에 투영하여 백성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석굴이다.

이 부분이 특히 내게 와닿았던 것은 가본 곳이기 때문이다.

2013년 여름 학교에서 가는 중국답사에서 예정에는 없었지만 박물관 관람시간이 안맞는 바람에 현지에서 급하게 차를 빌리고 가이드를 사서 갔던 곳이다.

주로 간 사람들이 도자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이라 북향당석굴에 대해서는 거의 정보도 없이 무작정 찾아갔었다.

당시는 8월 중순으로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우리나라의 여름보다 몇배는 더운 날씨였었고(아마 40도는 족히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굴이 그렇게 산 중턱에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멀리 차에서 보았을때 산 중턱에 있는 건축물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랬건만 석굴은 그곳에 있었다.

끝까지 가야하나 아니면 포기하고 내려가야 하나 고심하다가 그 더위에 올라간 것이 아쉬워 끝까지 갔었는데, 그때 본 것은 중동이었다.

아름답게 채색된 불상이 인상적이었으나 거의 실신 직전이어서 제대로 감상하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북향당석굴의 의미를 알게 되어 기쁘면서도 그때 알고 봤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든다.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미술품을 포함한 여러 물질문화는 얼마나 알고 보느냐에 따라 더 많이 기억에 남는 것 같다.

핸드폰을 뒤져보니 그때 찍었던 북향당석굴의 사진이 있다.

같이 갔던 사람들사이에서 그때 답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답사장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