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흔적

 

 

 

요새 집근처에 있는 잠실 교보문고에 가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책이다.

이전부터 소문을 들어 재미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막상 엄두가 나지 않아 읽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 한가해진 틈을 타 보게 되었다.

중간중간 말도 안된다며 말하면서도 피식피식 웃게되는 책이다.

 

스웨덴의 한 요양원에서 100세 생일날 도망친 '알란 칼손'이라는 영감님의 일대기를 그린 내용이다.

학교도 거의 다니지 않은 사람이지만 수많은 우연과 자기 자신의 노력(이 영감님은 전 세계를 돌면서 많은 언어를 살기 위해 익혔다-역시 사람은 먹고 사는 문제에 봉착하면 놀라운 힘이 생기나보다.), 정치를 싫어하는 듯 하지만 기가 막히게 이용하는 능력 등을 앞세워 20세기 세계의 유명한 사람들은 다 만나고 다닌다.

미국의 트루먼대통령, 중국 국민당의 우두머리였던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모택동,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까지 근현대사를 수놓은 걸출한 인물들과 우연찮게 엮이면서 수많은 위기에서 벗어나며 전 세계를 휩쓸고 다닌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알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한 체제의 편을 들거나 싫어하거나 하지 않고 항상 중립을 지킨다는 점이다.

잘 알다시피 20세기는 거의 전 세계가 어느 한쪽 진영에 설것을 요구받았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알란은 한결같이 그와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그런 정치적인 얘기를 싫어한다고 밝히기까지 한다.

하지만 죽지 않고 갖은 수단과 여러 우연이 맞물리면서 목숨을 부지하며 100세 이후에는 요양원에서 탈출하여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정치, 사상과 전혀 연관되지 않고 심지어 그런 것들을 경멸하기까지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체제와 사상을 만든 사람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정치와 무관한 듯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어느 것 하나 정치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다.

거의 모든 것이 현실의 정치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잊고 혹은 잊으려고 노력하면서 사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삶이 정치와 깊이 연관되어 있기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똑바로 하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 정치적 힘을 위임받은 대리인들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있어 그 어느때보다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기에 이 책의 내용을 그저 웃어넘기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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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논문때문에 여유롭게 전시를 보거나 한가롭게 책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논문제출의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 책과 전시를 조금은 즐기면서 보고 있다.

물론 이 여유로움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지난 토요일 오후 집에 있기에는 너무 덥기도 하거니와 좋은 전시도 있어서 오랜만에 경복궁에 있는 고궁박물관에 다녀왔다.

아이와 같이 가려고 하였으나 박물관을 싫어하는지라 혼자 다녀오게 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조선왕실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상설전과 함께 종묘전이 열리고 있었다.(아쉽게도 8월 3일자로 종료되었다.)

 

'종묘'전은선왕실에서의 종묘의 성격과 위치, 그리고 그것의 함축하고 있는 의미들을 여러 주제로 나누어 설명한 전시이다.

종묘의 역사와 건축에 관한 것에서부터 종묘 제향과 제기, 제례악과 같은 의례에 관한 내용까지 최근에 본 전시 중 가장 알찬 구성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종묘 제향에 사용된 여러 종류의 제기들의 전시가 눈길을 끌었다.

제향을 구성하는 제기가 어떤 종류인지 그리고 어떻게 상을 차렸는지 재현한 부분은 마치 실제로 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이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종묘의 제기를 보관하던 장소를 그대로 보여준 부분이었다.

제기고라 불리는 이 장소는 종묘에서 치뤄지는 각종 제향에 사용하는 그릇을 보관하던 곳으로 차곡차곡 그릇을 정리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종묘는 유교의 법도와 예의를 지킴으로써 국가와 왕실의 정통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조선의 모습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좋은 테마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테마라도 그것을 제대로 엮어놓지 못하고 구성이 허술하면 그저그런 전시가 되고 만다.

그러나 이번의 국립고궁박물관 종묘전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좋은 테마에 적절한 구성이 어우러진 간만에 볼만한 전시가 아니었나 싶다.

적절한 유물 선정과 수량을 조정하여 포인트를 줘야할 곳과 힘을 빼야 할 곳이 적당이 섞여 있어 보는 입장에서 힘들지 않으면서도 요약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전시를 구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과 있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기에 더 흥미러웠다. 

 

 

18세기의 맛

 

이책은 잡은 지는 오래되었으나 다 읽은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논문을 끝내고 바로 읽기 시작했지만 그 사이에 급하게 해야하는 일이 있어서 꾸준히 읽지 못하였다.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이 책은 18세기 유럽, 미국, 일본, 중국, 한국 등에서 살펴볼 수 있는 맛과 관련된, 즉 음식과 관련된 역사책이다.

술, 차, 커피와 같은 기호식품을 비롯해 진, 삼해주, 와인, 맥주와 같은 술에 대한 18세기인들의 다양한 시각을 알 수 있다.

또한 고추장, 조선의 소고기 환약, 솔잎 등 조선의 18세기를 상징하는 음식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이외에도 소금, 버터, 감자, 파스타 등 다양한 음식에 얽힌 역사와 그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각 주제마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풍부한 사료와 시각자료를 활용하여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한 주제마다 분량이 많지 않으므로 끊어 읽어도 크게 단절되는 느낌이 없어서 좋았다.

각국의 상황은 다르지만 18세기라는 공간이 중세에서 벗어나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시작되고 꽃피우는 시기라는 점과 동서양 모두 왕조중심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모순들이 극대화되어가던 시기이기도 하여 그 안에서 음식과 관련된 역사가 어떻게 펼쳐졌는지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특히 조선의 18세기를 대표하는 솔잎은 일반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을때 먹을수 밖에 없었던 구황식물로, 당시 조선은 두번의 전쟁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연재해 때문에 기근이 심각하였다.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곡식이 부족하자 솔잎먹는 방법이나 요리를 개발해 국가가 널리 홍보하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솔잎은 너무 맛이 없었고 변비 등 여러 다른 질환을 동반하였다.

하지만 국가는 백성들이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곡식도 제공하지 못하였고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솔잎을 먹을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백성들이 솔잎을 먹을때 상업경제와 수공업의 발달로 부를 축적한 중인이상의 사람들은 18세기가 되면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이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반면, 한쪽은 넘치는 부를 사치에 사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지금의 모습과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모든 물질문화의 등장과 유행, 변화, 소멸 등은 간단하지 않다.

동시기 다른 문화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거치며 그 과정을 통해 존폐가 결정되기도 한다.

이것은 맛과 관련된 수많은 키워드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책을 읽으며 17세기의 맛, 19세기의 맛, 20세기의 맛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였고, 개인적으로는 고려시대의 맛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알고 싶기도 하다.

지대물박

 

'地大物博'. '땅은 크고 문물은 넓다'

직역하면 이런 뜻이다.

중국의 넓은 땅과 그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여러 문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음을 나타내는 의미이다.

얼마나 그 땅안에, 그 사람들이, 그 문물이 다양하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한반도처럼 작은 땅에서도 지역이 나뉘고 그에 따라 지역색이 분명한 문화가 있음을 볼때 중국은 어떠할지 상상하기조차 힘들지 모른다.

 

이 책은 중국에서 중국미술사를 전공한 미술사학자에 의해 씌여진 책이다.

따라서 각 주제마다 깊이도 있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중국유학을 마치고 막 한국에 오셨을때 대학원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중국미술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최신 자료를 이용해 강의를 진행하셔서 인상깊은 수업 중 하나였다.

물론 학생들이 못 알아듣거나 너무 아는 것이 없어서 실망하셨던(?) 적도 많으셨다.

듣는 학생들이야 흥미로웠지만 강의하는 입장에서는 많이 답답하셨으리라.

 

신문에 소개된 글을 읽고 바로 구입해서 읽게 되었는데 예전에 수업때 강조하시거나 주제로 삼았던 내용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어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중국미술사를 각각의 주제별로 하면서도 큰 줄기는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먼저 선사와 고대에 해당하는 옥기와 청동기를 비롯하여 수많은 유물이 발견된 진시황릉에 대해 다루고 있다.

또한 자금성의 구성을 통해 중국인의 천하관을 살펴보고 있으며, 북경에 위치한 천단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그 성격이 바뀌었는지 설명하였다.

사방이 막힌 중국의 주거문화의 대표적인 특징인 사합원과 건축기술의 발전과 가구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살피고 있다.

이외에도 북제시대 황제의 석굴인 북향당석굴과 중국 회화를 읽는 방법, 길상을 추구하는 중국의 공예 등에 대해 비교적 알기 쉽게 서술하였다.

중국미술이야 그 양과 질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방대하고 다양하다.

그 내용을 다 알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 책을 통해서 중국미술사의 맛보기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이중에서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북향당석굴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북항댱석굴은 중국 하북성 자현에 있는데, 고산의 중턱에 있다.

북제의 문선제의 무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북동을 비롯해, 중동, 남동 3개로 구성되어 있다.

황제가 직접 건설에 관여한 석굴로 황제의 권위를 부처에 투영하여 백성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석굴이다.

이 부분이 특히 내게 와닿았던 것은 가본 곳이기 때문이다.

2013년 여름 학교에서 가는 중국답사에서 예정에는 없었지만 박물관 관람시간이 안맞는 바람에 현지에서 급하게 차를 빌리고 가이드를 사서 갔던 곳이다.

주로 간 사람들이 도자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이라 북향당석굴에 대해서는 거의 정보도 없이 무작정 찾아갔었다.

당시는 8월 중순으로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우리나라의 여름보다 몇배는 더운 날씨였었고(아마 40도는 족히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굴이 그렇게 산 중턱에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멀리 차에서 보았을때 산 중턱에 있는 건축물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랬건만 석굴은 그곳에 있었다.

끝까지 가야하나 아니면 포기하고 내려가야 하나 고심하다가 그 더위에 올라간 것이 아쉬워 끝까지 갔었는데, 그때 본 것은 중동이었다.

아름답게 채색된 불상이 인상적이었으나 거의 실신 직전이어서 제대로 감상하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북향당석굴의 의미를 알게 되어 기쁘면서도 그때 알고 봤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든다.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미술품을 포함한 여러 물질문화는 얼마나 알고 보느냐에 따라 더 많이 기억에 남는 것 같다.

핸드폰을 뒤져보니 그때 찍었던 북향당석굴의 사진이 있다.

같이 갔던 사람들사이에서 그때 답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답사장소이기도 하다.

 

 

 

 

그동안 블로그를 못한지 반년이 훌쩍 넘어 버렸다.

지난 상반기 드디어 박사논문을 완성하고 이제 제출까지 마무리했다.

15년이상 공부해온 것들은 모두 쏟아붓고 나니 이상하게 홀가분하기 보다는 허탈함이 더 큰 것 같다.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임에 불과한 논문을 쓰기 위해 나름 젊은 시절 열정을 다 불태웠다고(?) 생각하니 서글프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제 마무리가 아니라 연구의 시작이라는 주변 선생님들의 말씀이 더 실감나기도 하고 여튼 복잡한 마음이다.

앞으로 닥칠 불분명한 미래와 계속 공부해야 하는 중압감 등등...

하나를 끝내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못내 답답하지만 며칠만이라도 멍때리고 있어야 겠다.

 

 

 

 

 

이 책은 읽은지 꽤 오래되었다.

두권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1권은 동생이 사 놓은 것을 읽었고 2권은 내가 사서 읽었다.

동생이 먼저 읽고 추천해 줘서 읽게 되었다.

지금 이 책들은 모두 동생이 읽는다고 가져가고 사진만 달랑 남아 있다.

책의 내용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엄마와 아들이 1년 가까이 세계를 배낭여행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엄마와 아들...

주변을 돌아보면 어렸을때는 죽고 못사는 관계이지만 아들이 크면서는 알게 모르게 벽이 존재하는 사이이다.

그런데 다 큰 아들과 환갑의 엄마가 힘든 배낭여행이라니...

중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동남아시아, 아라비아, 유럽까지 지구 반대편을 꼼꼼히 돌고 기록한 기행문이다.

서두 부분에 중국에서 직각의 의자에 앉아 10시간 이상의 기차를 타야했던 부분을 묘사한 글쓴이의 글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기 시작해 서서히 빨려들어가더니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스토리와 글빨(?)을 갖춘 책이다.

기행문이지만 단순히 여행지의 풍경이나 역사를 풀어놓은 것이 아니라 여행중 만난 사람들과 그 속에 변화한 엄마와 아들의 모습이 흥미진진하게 서술되어 있다.

특히 여행하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엄마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한 엄마를 향한 아들의 사랑스러운 눈길을 글안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여행지의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이 베푼  친절은 책을 읽는 내내 미소짓게 헸고 각 여행지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은 그냥 덤인 것 같다.

결국 여행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임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느꼈다.

책의 자세한 내용은 직접 사서 읽어 보시길 권한다.

또한 글쓴이가 직접 찍은 사진들도 여느 프로 사진가 못지 않기에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결국 사람이다.

모든 문제 상황도 사람사이에 벌어지는 것이고 좋은 일도 사람사이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내 주관, 내 편견, 내 상황  때문에 순수하게 사람들을 바라보고 대할수 없는 것은 아닌지 또 너무 겁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글쓴이와 글쓴이의 엄마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좋은 사람들인 것으로 보아 뉴스나 신문에 나오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다 좋은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옷장 속의 세계사

 

오랜만에 서평을 쓴다.

그동안 아르바이트에, 논문에, 몸살감기에 나름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 와중에 띄엄띄엄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었다.

아이가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진즉 사 놓은 책이었지만 책장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니기만 할뿐 아이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전공책은 너무 보기 싫었던 차에 손에 잡히는 바람에 읽게 된 책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옷을 통해 그것에 얽힌 역사를 엄마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쓰여진 책으로, 무엇보다도 조곤조곤 옆에서 말해주는 듯한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청바지, 비단, 벨벳, 트렌치코트, 스타킹, 비키니 등 흔히 볼 수 있는 주변의 옷을 통해 그와 관련한 역사가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청바지나 비단에 얽힌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벨벳이나 트렌치코트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아주 가까운 시기 체코슬로바키아의 비폭력혁명과 관련된 벨벳의 이야기는 당시 뉴스에서 보던 내용과 겹쳐지며 아!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의 역사를 벨벳이라는 옷감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처럼 하나의 커다란 테마를 정하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여러 소주제별로 읽기 쉽게 구성한 책은 근래에 보기 드물었던 듯하다.

대개 어린이나 청소년 대상의 역사책은 시대순으로 나열하여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사물을 통해 그것에 담긴 역사적 이야기를 편하게 들려주고 있어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있게 해준다.

역사가 마냥 어럽고 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에게 추천한다면 거부감없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적극 추천할 수 있는 책을 찾은 듯 하여 읽으면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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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고 있는 공부와 밥벌이때문에 필수적으로 답사를 많이 다녀야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를 가더라도 박물관 혹은 유적지를 반드시 찾아다니곤 했다.

정식 답사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족여행에서도 남들 다가는 관광지보다는 그 지역의 박물관이나 유적을 먼저 검색해 가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러한 습관은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20여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다녔던 여행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내가 가야 하는 답사에 아이를 놓고 갈 수 없어서 민폐인줄 알면서도 데리고 간 적도 여러번이다.

우리 아이는 해외여행을 엄마의 답사일정에 맞추어 다녀야 했다.

당연히 박물관만 다녀서 아이에게는 정말 재미없었을 것이고 그 휴유증이 지금 박물관 가기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박물관 매점에서 사먹는 아이스크림으로 꼬시거나 맛있는 것 사준다며 달래서 데리고 다녔고 이제는 굳이 엄마를 따라가려 하지 않는다.

얼마나 재미가 없었으면 그럴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곳을 다니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나도 이제는 한번쯤 목적없이 훌쩍 떠나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저자는 세살 어린 아들을 데리고 터키로 배낭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본 것, 느낀 것, 만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 이 책의 구성이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용감함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세살 남자아이! 그야말로 대책없는 나이이다.

많이 걷지도 못할테고 입은 짧을 것이며 잠시도 가만있지 못할뿐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차를 타거나 한가지 일에 장시간 집중하는 것은 꿈도 못꾸는 나이가 세살이다.

책을 읽어보면 그런 대목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장시간 차를 탔는데 아이가 울고 보채서 곤란을 겪었던 일, 저자가 너무 보고 싶은 곳을 눈앞에 두고도 고집부리는 아이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온 일 등등 여행기간 내내 아이와 줄다리기를 했다고 한다.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이라면 모두 공감하는 이야기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스케줄을 아이에게 맞추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지 비록 활자로 읽었지만 눈앞에서 그 상황에 직면한 것 같았다.

아마 나도 몇번 아이를 데리고 해외에 나가서 겪었던 일과 비슷한 상황이 있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아이와 같이 한 여행에서 참고 기다리는 법, 낮은 곳을 보는 법, 편견없이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육체적으로는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이가 엄마를 그곳에 데려다 주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책의 곳곳에서 저자의 이러한 생각이 그저 하는 말이 아니라 오롯이 가슴으로 느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목표없이, 목적없이 바람가는대로 돌아다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동안 얼마를 들여 가는 여행인데 하나라도 더 봐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잃고 빡빡한 답사만 다녔던 것 같다.

물론 8월에도 한치의 빈틈도 없는 일정의 답사를 다녀와야 하지만 조만간 아이를 데리고 그냥 떠나는 여행을 해봐야겠다.

어느날 갑자기 별안간 떠나는 여행! 정말이지 떠나고 싶다.

 

 

오랜만에 서평을 올린다.

그동안 학기말이라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다.

아이 기말고사 준비도 도와줘야 했고 강의하는 과목 시험에 채점에 성적처리까지 거기에 약간의 집안일까지...6월과 7월초는 순식간에 휙 지나간 것 같다.

그 중 가장 힘들었던 건 성적처리였다.

가르치는 것은 어떻게 하겠는데 채점과 성적처리는 정말 스트레스 만빵이었다.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학생들은 그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강사 또한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장난아니다.

해가 갈수록 더해가는 것 같아 심히 괴로웠다.

어지간해서는 스트레스를 안 받는 편이라 자부했는데 평가를 하는 행위는 근래들어 박사논문 쓰는 것보다 더한 스트레스였다.

이런 사족들은 역시 그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음에 핑계를 대기 위한 것들이다.

이래저래 책도 못 읽고 해서 올릴 내용이 없었다.

이제 방학이니 조금 부지런을 떨어볼 생각이다.

 

'남편의 서가'는 방학전부터 사놓고 책상위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책이다.

신문의 책 소개란을 보고 집에 오는 길에 서점에서 구입한 책이다.

출판평론가이자 작가인 남편을 병으로 잃은 저자가 남편을 떠나보내며 쓴 책으로 에세이이자 서평집이다.

남편을 향한 그리움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남편의 병상에서 또 그 사후에 맞닥뜨렸던 여러 상황에 어울리는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책과 관련된 일을 했던 남편과 같이 살면서 자연스럽게 저자 역시 책을 가까이 하게되었고 남편이 세상을 뜬 이후에는 남편이 남긴 책을 통해 그 슬픔을 치유하고 일어서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저자 특유의 감성과 가치관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으면서 그림책부터 소설, 철학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자연스럽게 녹아내어 읽기가 편하다.

부부에게 있어 배우자를 잃는 것은 사지의 절반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고통이라 한다.

그 고통을 남편이 남긴 책을 통해 극복하는 과정이 오롯이 드러나고 있어 코끝이 시끈해지기도 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순간 겁이 나고 무섭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했으면 남편에게 잘해야 하는데 역시 실천이 쉽지 않다!)

또 아이를 키우는 주부 입장에서 느끼는 교육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내가 생각하는 바와 일치하는 것들이 있어서 흥미롭기도 했다.

이땅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라도 생각해봄직한 여러 문제들-특히 사교육-에 대해 저자의 솔직한 생각과 한번 읽어봐야할 책들이 소개되어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책들 중 읽은 것도 있고  한번 읽어봐야지 하는 책들도 있었다.

특히 아이와의 여행기를 내용을 한 오소'바람이 우리를 데려디주겠지'를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 소개된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사치란 사전에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주로 씀씀이나 꾸밈새, 행사의 치레 따위에서,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씀으로써 자신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함"

위의 표현처럼 사치라고 하면 일단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 보통이다.

이를테면 절제, 검소, 절약의 반대말로 사치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는 각 문명별로 사치가 그 문명을 어떻게 견인했는지 서술하면서 사치를 그저 부정적인 언어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문화적 동력이 된 사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인류의 각 문명은 끊임없이 사치스러움, 사치품을 갖고자 노력하였고 그것을 만들어내거나 얻어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음을 말하고 있는데, 고대의 수메르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를 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의 도자기, 비단, 칠기, 옥이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부와 발전을 가져다 주었는지, 또 중국의 이러한 물건이 비단길이나 해상무역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이것이 서방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사치를 크게 두개의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사치품으로 대표되는 물질적 사치와 철학, 문학, 종교 등에서 추구하는 비물질적 사치의 구분이 그것이다. 

때문에 내용이 어느부분에서는 많이 소략되어 있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곳도 있으며, 예로 든 사치품의 사진이 빠져서 정확하게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 감이 안 오는 부분도 있다.

또 지나치게 비물질적 부분의 사치에 대해서-예를 들어 그리스의 철학- 설명하다 보니 이것이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사치의 영역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차라리 비물질적 사치 부분은 빼고 물질적 사치부분에 집중하였다면 더 많은 것을 말할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장점은 기존에 사치라는 단어가 가졌던 부정적 의미를 넘어 긍정적 의미까지도 짚어 보게 하였다.

저자의 말처럼 사치는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워졌는가의 기준이 되어야 하며,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또한 치스럽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적정선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역사의 흐름을 보면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과연 문화적 동력이 되는 사치를 추구하는지 아니면 그저 망하는 지름길로 가는 사치를 하고 있는 것인지 묵직한 물음이 있는 책이다.

 

아이 친구 엄마 덕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하는 "세계팝업아트전"을 다녀왔다.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무척 많았다.

많은 사람들 틈 바구니에서 다양한 팝업아트를 볼 수 있었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흥미롭게 전시를 관람하는 것 같았다.

아이가 어릴때 종종 사주었던 책 중에 책장을 펼치면 공룡이나 동물이 튀어나오는 것을 어른인 나도 매우 신기했다.

아마 내가 어릴때는 이런 책이 많지 않아서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아이들의 책에 포함된 팝업뿐만 아니라 하나의 완벽한 장르로써의 팝업이 많이 소개되어 있었다.

세밀하게 잘라서 만든 도시의 모습, 미래의 모습, 여러 모빌들, 동화속 풍경, 여러 기하학적인 문양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했다.  

아주 정밀하고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작업과정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 같은 작품들이었다.

이것을 만들기 위해 작가들이 얼마나 머리를 쓰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민하고 정성을 들여 만들었는지 작품마다 다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나같이 손재주가 없는 사람은 이렇게 손으로 정성들여 만든 것에 대한 로망이 있다.

아마 내 손에서는 탄생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더 그럴 것이다.

여튼 같이간 아이는 대충 보는 것 같았지만 나는 간만에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 것 같아서 좋았다.

아쉽게도 이젠 전시가 종료되어 더이상 볼 수 없지만 나중에 이런 전시가 있으면 꼭 다시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