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흔적

 

 

지금 하고 있는 공부와 밥벌이때문에 필수적으로 답사를 많이 다녀야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를 가더라도 박물관 혹은 유적지를 반드시 찾아다니곤 했다.

정식 답사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족여행에서도 남들 다가는 관광지보다는 그 지역의 박물관이나 유적을 먼저 검색해 가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러한 습관은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20여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다녔던 여행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내가 가야 하는 답사에 아이를 놓고 갈 수 없어서 민폐인줄 알면서도 데리고 간 적도 여러번이다.

우리 아이는 해외여행을 엄마의 답사일정에 맞추어 다녀야 했다.

당연히 박물관만 다녀서 아이에게는 정말 재미없었을 것이고 그 휴유증이 지금 박물관 가기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박물관 매점에서 사먹는 아이스크림으로 꼬시거나 맛있는 것 사준다며 달래서 데리고 다녔고 이제는 굳이 엄마를 따라가려 하지 않는다.

얼마나 재미가 없었으면 그럴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곳을 다니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나도 이제는 한번쯤 목적없이 훌쩍 떠나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저자는 세살 어린 아들을 데리고 터키로 배낭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본 것, 느낀 것, 만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 이 책의 구성이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용감함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세살 남자아이! 그야말로 대책없는 나이이다.

많이 걷지도 못할테고 입은 짧을 것이며 잠시도 가만있지 못할뿐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차를 타거나 한가지 일에 장시간 집중하는 것은 꿈도 못꾸는 나이가 세살이다.

책을 읽어보면 그런 대목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장시간 차를 탔는데 아이가 울고 보채서 곤란을 겪었던 일, 저자가 너무 보고 싶은 곳을 눈앞에 두고도 고집부리는 아이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온 일 등등 여행기간 내내 아이와 줄다리기를 했다고 한다.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이라면 모두 공감하는 이야기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스케줄을 아이에게 맞추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지 비록 활자로 읽었지만 눈앞에서 그 상황에 직면한 것 같았다.

아마 나도 몇번 아이를 데리고 해외에 나가서 겪었던 일과 비슷한 상황이 있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아이와 같이 한 여행에서 참고 기다리는 법, 낮은 곳을 보는 법, 편견없이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육체적으로는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이가 엄마를 그곳에 데려다 주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책의 곳곳에서 저자의 이러한 생각이 그저 하는 말이 아니라 오롯이 가슴으로 느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목표없이, 목적없이 바람가는대로 돌아다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동안 얼마를 들여 가는 여행인데 하나라도 더 봐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잃고 빡빡한 답사만 다녔던 것 같다.

물론 8월에도 한치의 빈틈도 없는 일정의 답사를 다녀와야 하지만 조만간 아이를 데리고 그냥 떠나는 여행을 해봐야겠다.

어느날 갑자기 별안간 떠나는 여행! 정말이지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