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흔적

생각의 지도

 

선배의 추천으로 산 책이다.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책꽂이에 자리한 지는 꽤 되었다.

박사논문 관련 책과 논문을 계속 보고 있던 중이라 지겨워서 분위기 전환용으로 꺼내들었다.

물론 분위기 전환용이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심도깊고 묵직해서 읽는데 여러날 걸렸다.

무엇보다도 중간에 몸살이 심하게 나서 며칠은 아예 책을 펴들지도 못했다.

이제야 책을 다 읽어 이렇게 글을 쓴다.

 

동양과 서양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은 점에서 다르다는 것을 심리학적인 면에서 많은 학설과 실험을 통해 입증하고 있는 책이다.

고대 중국을 뿌리에 두고 있는 동양사회(중국, 일본, 한국의 예가 대부분이다)는 농업중심의 촌락사회였기 때문에 혈연중심이면서 서로의 관계를 중시하고 중용을 추구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동양은 사물이나 사람 모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여러 관계를 맺고 다양한 맥락속에서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고대 그리스에 뿌리는 둔 서양사회는 사물과 사람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므로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동서양의 차이는 서로 다른 자연환경, 사회구조, 철학과 사상, 교육제도 등 매우 다른 사고방식과 표현방식을 낳았고 글로벌한 현재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저자는 판단하였다.

결국 동양과 서양 모두 장단점을 각각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 이러한 장단점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면 좀 더 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으며 서로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저자가 구체적인 예로 든 것들 중 일부는, 특히 동양에 대해서는 오해하고 있거나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특히 한국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역사적인 한국만의 특성을 간과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서양의 장점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논쟁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에서 한국에서 북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을 전통적으로 논쟁하는 문화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았는데, 이것은 엄혹한 군사정권하에서 반공이 강조되면서 이루어진 정치적인 면에서의 억압이었다.

논쟁을 할 줄 몰라서 안 한 것이 아니라 논쟁을 하거나 언급을 하면 잡혀가기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조선시대를 보면 비록 실제 일반 백성들의 삶과 동떨어진 문제를 주로 다루기 했으나 조정의 신료들이나 학자들간에 치열한 사상적, 이론적 충돌은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오류는 저자가 역사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이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관계를 소략하게 다루다보니 생긴 문제라고 본다.

 

이 책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무릎을 치며 동의했던 부분은 동양은 어떤 사물이든지 주변 맥락에 따라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칼로 무 자르듯 정확하게 범주화하여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단순한 범주와 규칙을 가지고 어떤 사물을 이해하고 통제하기에는 우주는 너무나 복잡하고 역동적인 곳이라고 보는 동양의 관점은 역사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고고학이나 미술사에서 유물에 대해 형식학적 분류를 시도하는 것은 기본이다.

비슷한 것끼리 묶어서 그것이 시기적으로 혹은 지역적으로 어떤 차이점과 유사점이 있고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아보는 방법이다.

그런데 중국도 그렇지만 한국의 유물은 형식분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형식분류상 a, b,c가 있으면 그 중간에 너무 많은 이형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공부를 하면서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는데-이건 한국에서 공부하는 고고학 미술사 전공자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이다- 이게 그럴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동양의 전통사회는 범주화하고 규격화하고 분류하는 것에 익숙치 않았으며, 이것이 그대로 그들이 남긴 유물에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물이나 유구(집터, 건물터 등등 단위 유적)의 분류가 깔끔하지 못하고 지저분했던 것이 당연한 것이었나 보다.

이책이 여러 오류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준 선물은 앞으로 내가 박사논문에서 진행할 형식분류가 잘 되지 않더라도 머리를 쥐어뜯지 않고 그러려니 하며 마음을 넓게 먹을 수 있는 희망을 주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