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흔적

>대통령의 글쓰기< (메디치, 2014.2, 강원국 저)

 

세상이 시끄럽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위정자가 하는 말을 사적으로 손대는 사람이 있었고 그것을 앵무새처럼 최고 권력자가 말했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어쩐지 이상하더라' 하는 의심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다시 대통령의 말과 글이 주목받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팟캐스트 방송에서 김대중, 노무현대통령 시절 연설비서관의 책을 알게 되었다.

워낙 저자가 재미있게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나도 글쓰기를 직업으로 갖고 있어서 더 관심이 갔다.

당장 사기는 했으나 밀린 일들이 워낙 많아서 시간내기가 어려워 이제야 읽었다.

이 책은 김대중, 노무현대통령의 연설을 중심으로 좋은 글을 쓰는 방법들을 알기 쉽게 담백한 문체로 서술했다.

좋은 글, 남을 설득하는 논리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생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은 자기 자신이 가진 콘텐츠라는 말이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분야에 대한 공부와 정리가 필요하다.

특히 지금처럼 많은 정보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는 그것을 필터링하여 정확한 정보로 매만지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자기의 콘텐츠가 생산되고 이것을 중심으로 말과 글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아무리 많고 좋다 하더라도 결국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 점을 저자는 두 대통령의 예를 적절히 들어가며 알기 쉽게 설명한다.

메모와 독서는 다시 강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중요한 것이고 글을 쓴 이후에는 그것을 계속 고치고 좋은 표현을 찾는 노력을 끝까지 해야 한다고 말한다.

두 대통령은 이것을 실천했던 사람들이었다.

주로 논문을 쓰는 내 입장에서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는 내용이었다.

글을 잘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공부한 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글로 표현하여 가장 잘 전달되도록 마지막까지 고치는 것이다.

내일 논문 수정본 제출 마감일이다.

거의 1년 이상 매달렸던 논문의 마지막 교정을 남겨두고 있다.

아마 수십번도 더 출력해서 수없이 고친 논문이다.

논리를 세우기 위해 했던 수많은 고민과 자료정리, 그리고 글을 쓰는 과정이 모두 힘들었다.

교정도 신물나게 보았다.

하지만 아직도 고칠것이 남아 있다.

내일 마지막 메일을 보내는 순간까지 고쳐야 할 것이고 그것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글이나 말을 논리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일개 논문도 이런 과정을 거쳐야 통과가 되는데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은 커녕 남이 써주는 것을 아무 생각없이 읽었다니 기가 차다.

이 책의 필자가 어떤 강연에서 말했듯이 이 사건 이후에는 아마 전반적으로 우리 국민들의 글쓰기 실력이 향상될 것 같기는 하다.

몇년전에 나온 책이지만 말도 안되는 정치적 사건때문에 재조명되고 있는 책이기도 하고 두 대통령의 글쓰기에 대한 철학과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글쓰기의 중요성 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으니 많이들 읽으시길 바란다.

 

책에서 가장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노무현대통령의 글쓰기 지침 중 하나인데, 정말 핵심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라 소개한다.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