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흔적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한국생활사박물관 1~12>>, 사계절

 

학부 강의나 개론 강의를 할때 대표적으로 추천하는 책 중 하나이다.

우리 집에는 이 세트가 다 있는데, 관심사에 따라 낱권으로 사도 된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생활사'에 초점을 맞추어 다양한 이미지와 그림, 설명이 잘 들어가 있다.

한국사를 박물관의 전시를 관람하는 것처럼 다양한 사진과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 학계의 저명한 학자들이 참여한 책이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다 볼 수 있는 책으로 방대한 한국사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였고 여기에 수록된 그림들은 여러 박물관에서 전시할 때 저작료를 지불하고 빌려 쓸 만큼 공을 들였다.

보통 역사를 복원한 그림은 사실이 왜곡되기 쉬운데 이 책은 그러한 점에서 공을 많이 들였다. 

그래서 따로 스캔해서 강의시간에 아주 잘 활용하고 있다.

책 중간중간 접지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 펼쳐보는 재미 또한 있다.

무엇보다도 현대사부분에서 우리가 빼먹기 쉬운 북한의 생활상까지도 하나로 묶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내 전공과 관련한 고려시대는 두권으로 되어 있는데 문헌자료와 발굴자료를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성실하게 복원해 놓았다.

글 내용은 대체로 평이한 편은 아니나 이미지가 많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미지위주로 보다가 관심있는 부분을 읽어보는 방식으로 여러번 읽는 것이 효과적인 책인것 같다.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까지도 두고두고 볼 수 있으니 적극 추천한다.

 

 

박종기, <<고려의 부곡인, <경계인>으로 살다>>, 푸른역사, 2012.

 

우리는 하나의 대상을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어느쪽에 분류하려고 한다.

여기 아니면 저기에 속해야 마음이 평안하고 안정된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

사상, 종교, 문화, 정치 등등 자기가 속한 혹은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길 강요받고 때로는 상대방에게 강요한다.

역사학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처럼 고려시대의 사람들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여기 아니면 저기라고 말해야 한다고 무언의 압력을 받아왔다.

구체적으로 고려사람들을 양인과 천인으로 구분하고 부곡에 속하는 사람들(향, 부곡, 소, 처, 장 등)을 어느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저자는 고려시대 부곡집단은 사회경제적으로 왕조정부의 수취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 존재로, 생산기능과 역할에 따라 3가지 집단으로 구분하였다.

향과 부곡, 소, 장과 처의 구분이 그것이다.

향과 부곡은 새로 개간을 통해 형성된 새로운 촌 혹은 고려를 건국할때 반왕조 집단을 지방에 편제하는 과정에서 생긴 특수촌락이다.

소는 광산물, 농수산물, 수공업제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곳으로 해당 물품의 원재료가 풍부하게 생산되는 곳으로 주로 설치되었다.

처와 장은 왕실과 사원의 수조지(그 땅에서 사는 세금을 직접 왕실과 사원에 바치는곳)이다.

기존 연구에서는 부곡집단을 양인 혹은 천인으로 명확히 구분하여 보고자 했다.

하지만 저자는 넓은 의미에서 부곡집단을 양인으로 보되, 양인과 천인의 경계선에 서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에 경계인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이다.

최근에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안 그래도 많은 부분에서 경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여기에 속하는 것도 같고 저기에 속하는 것도 같은 것이 우리 역사에는 너무 많다.

이것을 내 판단에 의해 구분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의문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아니 직접적으로 말해 너무 어렵다.

또한 문헌이나 자료에서 명확하게 설명해줄수 있는 근거가 많으면 좋은데 아쉽게도 별로 없다.

그래서 요즘 드는 생각은 경계에 있는 것들에 대해 너무 빨리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작위적이더라도 명확하게 구분하고 가는 것이 논문을 쓰는데는 효과적이겠지만 그것이 그 당시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역사연구란 당시로 돌아가 그 사회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복원하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에 무 자르듯이 잘라지지 않는다.

수많은 경계의 것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되도록이면 끝까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살아야 하는 이유

 

일본에서 자이니치를 대표하는 도쿄대 강상중 교수의 책이다.

전작 '고민하는 힘'에 이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오롯이 투영되어 있다.

저자는 최근에 외적으로는 일본을 강타한 3.11 지진과 내적으로는 아들의 죽음을 목도했다.

너무도 힘든 두가지 일생일대의 사건을 겪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 책이 바로 이것이다.

20세기 초반에 동서양의 지성을 대표하는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 및 여러 학자들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서술하고 있다.

한번 읽어서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행간에 스며있는 진정한 의미를 다 알기 어렵다고 느껴진다.

여러번 더 읽어야 하겠지만 한번 읽은 지금상태로 이 책에서 얻은 것은 극도로 불안한 현 시점에서 내 삶을 어떤 태토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인간이 가진 진가 세가지인 창조, 경험, 태도에서 저자는 태도를 가장 중시했다.

나에게 닥친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관한 태도,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는 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또한 '정신없는 전문인'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표현 역시 가슴을 때렸다.

나는 왜 공부하고 있는가? 공부해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박사과정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들이다.

무엇보다도 특정 소수에게만 필요한 연구가 아닌가 하는 점에서 항상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아직도 그 답을 얻지 못했고 앞으로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가끔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남들이 알지 못하고 그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알았을때 이것때문에 공부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박사논문을 쓴 이후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해야 겠지만 그저 취직하기 위해 혹은 먹고 살기위해 공부한다면 내 자신이 너무 서글퍼질것 같다.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서 저자처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