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흔적

 

사치란 사전에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주로 씀씀이나 꾸밈새, 행사의 치레 따위에서,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씀으로써 자신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함"

위의 표현처럼 사치라고 하면 일단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 보통이다.

이를테면 절제, 검소, 절약의 반대말로 사치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는 각 문명별로 사치가 그 문명을 어떻게 견인했는지 서술하면서 사치를 그저 부정적인 언어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문화적 동력이 된 사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인류의 각 문명은 끊임없이 사치스러움, 사치품을 갖고자 노력하였고 그것을 만들어내거나 얻어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음을 말하고 있는데, 고대의 수메르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를 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의 도자기, 비단, 칠기, 옥이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부와 발전을 가져다 주었는지, 또 중국의 이러한 물건이 비단길이나 해상무역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이것이 서방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사치를 크게 두개의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사치품으로 대표되는 물질적 사치와 철학, 문학, 종교 등에서 추구하는 비물질적 사치의 구분이 그것이다. 

때문에 내용이 어느부분에서는 많이 소략되어 있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곳도 있으며, 예로 든 사치품의 사진이 빠져서 정확하게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 감이 안 오는 부분도 있다.

또 지나치게 비물질적 부분의 사치에 대해서-예를 들어 그리스의 철학- 설명하다 보니 이것이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사치의 영역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차라리 비물질적 사치 부분은 빼고 물질적 사치부분에 집중하였다면 더 많은 것을 말할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장점은 기존에 사치라는 단어가 가졌던 부정적 의미를 넘어 긍정적 의미까지도 짚어 보게 하였다.

저자의 말처럼 사치는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워졌는가의 기준이 되어야 하며,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또한 치스럽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적정선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역사의 흐름을 보면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과연 문화적 동력이 되는 사치를 추구하는지 아니면 그저 망하는 지름길로 가는 사치를 하고 있는 것인지 묵직한 물음이 있는 책이다.

 

아이 친구 엄마 덕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하는 "세계팝업아트전"을 다녀왔다.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무척 많았다.

많은 사람들 틈 바구니에서 다양한 팝업아트를 볼 수 있었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흥미롭게 전시를 관람하는 것 같았다.

아이가 어릴때 종종 사주었던 책 중에 책장을 펼치면 공룡이나 동물이 튀어나오는 것을 어른인 나도 매우 신기했다.

아마 내가 어릴때는 이런 책이 많지 않아서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아이들의 책에 포함된 팝업뿐만 아니라 하나의 완벽한 장르로써의 팝업이 많이 소개되어 있었다.

세밀하게 잘라서 만든 도시의 모습, 미래의 모습, 여러 모빌들, 동화속 풍경, 여러 기하학적인 문양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했다.  

아주 정밀하고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작업과정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 같은 작품들이었다.

이것을 만들기 위해 작가들이 얼마나 머리를 쓰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민하고 정성을 들여 만들었는지 작품마다 다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나같이 손재주가 없는 사람은 이렇게 손으로 정성들여 만든 것에 대한 로망이 있다.

아마 내 손에서는 탄생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더 그럴 것이다.

여튼 같이간 아이는 대충 보는 것 같았지만 나는 간만에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 것 같아서 좋았다.

아쉽게도 이젠 전시가 종료되어 더이상 볼 수 없지만 나중에 이런 전시가 있으면 꼭 다시 가봐야겠다.

 

지금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금은보화전-한국전통공예의 미"를 하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근대기까지 유물 중 화려하고 뛰어난 미술품을 모아서 하는 전시이다.

신라시대 금관부터 고려시대 은제 주전자와 조선시대 장신구, 근대기 화병까지 다양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도록에서만 봤던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 <은제도금 주자 및 승반>도 볼 수 있었고, 청자에 금박을 입힌 <청자상감 화금당초문 접시>도 전시되었다.

삼성에서 만든 미술관인 만큼 전시설명 역시 스마트(?)했다.

유물앞에 서면 자동으로 설명이 나오고 해당 유물의 사진을 확대해 볼 수 있는 개인 단말기가 인상적이었다.

또 중요 유물은 화면을 통해서 360도 회전해볼 수 있고 확대해 볼 수 있었다.

기존 우리나라 박물관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기술들이 적용되어 신선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예 전시장 자체가 돌아가서 유물을 실제로 360도 회전하여 볼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외국 박물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니 우리나라라고 하지 못할리 없으니 조만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번 전시의 유물은 당시의 최고급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 분명한 것만을 모아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유물의 양이 많지 않았지만 하나하나 자세히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유물을 선정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종종 전시들을 보면 너무 많이 보여주고자 하여 전시품이 많아지고 결국 하이라이트가 없어서 뭘 봤는지 인상적이지 못할때가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적절히 조정하여 과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기본적으로 한국은 은은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조선을 거치면서 생긴 것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교육을 받은 우리들은 우리의 문화가 소박하고 질박하며 단순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리움의 전시를 보면서, 또 강의를 하면서 장시간에 걸쳐 생각을 해보니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물질문화를 살펴보면 우리가 그리 소박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특히 고려시대는 금속공예를 비롯하여 청자가 매우 화려한데, 소박하다고 생각해온 우리 문화가 화려함도 뒤지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하나의 잣대로 규정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일 것이다.(기존에는 이런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물질문화는 시대별로 다양한 면모를 보이며, 한 시대 안에서도 분야에 따라 많은 모습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동안 소박함만을 강조해온 전통공예가 화려한 면모도 상당부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임팩트있게 보여주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되면 다시 한번 가서 봐야겠다.

 

(나는 전시를 볼때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도록도 워낙 잘 나오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사진을 찍다 보면 정작 유물을 자세히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로그에 올릴 전시사진이 없는 단점이 생겨버렸다. 앞으로는 많이는 아니더라도 몇장이라도 찍도록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