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흔적

옷장 속의 세계사

 

오랜만에 서평을 쓴다.

그동안 아르바이트에, 논문에, 몸살감기에 나름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 와중에 띄엄띄엄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었다.

아이가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진즉 사 놓은 책이었지만 책장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니기만 할뿐 아이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전공책은 너무 보기 싫었던 차에 손에 잡히는 바람에 읽게 된 책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옷을 통해 그것에 얽힌 역사를 엄마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쓰여진 책으로, 무엇보다도 조곤조곤 옆에서 말해주는 듯한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청바지, 비단, 벨벳, 트렌치코트, 스타킹, 비키니 등 흔히 볼 수 있는 주변의 옷을 통해 그와 관련한 역사가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청바지나 비단에 얽힌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벨벳이나 트렌치코트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아주 가까운 시기 체코슬로바키아의 비폭력혁명과 관련된 벨벳의 이야기는 당시 뉴스에서 보던 내용과 겹쳐지며 아!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의 역사를 벨벳이라는 옷감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처럼 하나의 커다란 테마를 정하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여러 소주제별로 읽기 쉽게 구성한 책은 근래에 보기 드물었던 듯하다.

대개 어린이나 청소년 대상의 역사책은 시대순으로 나열하여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사물을 통해 그것에 담긴 역사적 이야기를 편하게 들려주고 있어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있게 해준다.

역사가 마냥 어럽고 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에게 추천한다면 거부감없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적극 추천할 수 있는 책을 찾은 듯 하여 읽으면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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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고 있는 공부와 밥벌이때문에 필수적으로 답사를 많이 다녀야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를 가더라도 박물관 혹은 유적지를 반드시 찾아다니곤 했다.

정식 답사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족여행에서도 남들 다가는 관광지보다는 그 지역의 박물관이나 유적을 먼저 검색해 가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러한 습관은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20여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다녔던 여행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내가 가야 하는 답사에 아이를 놓고 갈 수 없어서 민폐인줄 알면서도 데리고 간 적도 여러번이다.

우리 아이는 해외여행을 엄마의 답사일정에 맞추어 다녀야 했다.

당연히 박물관만 다녀서 아이에게는 정말 재미없었을 것이고 그 휴유증이 지금 박물관 가기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박물관 매점에서 사먹는 아이스크림으로 꼬시거나 맛있는 것 사준다며 달래서 데리고 다녔고 이제는 굳이 엄마를 따라가려 하지 않는다.

얼마나 재미가 없었으면 그럴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곳을 다니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나도 이제는 한번쯤 목적없이 훌쩍 떠나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저자는 세살 어린 아들을 데리고 터키로 배낭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본 것, 느낀 것, 만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 이 책의 구성이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용감함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세살 남자아이! 그야말로 대책없는 나이이다.

많이 걷지도 못할테고 입은 짧을 것이며 잠시도 가만있지 못할뿐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차를 타거나 한가지 일에 장시간 집중하는 것은 꿈도 못꾸는 나이가 세살이다.

책을 읽어보면 그런 대목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장시간 차를 탔는데 아이가 울고 보채서 곤란을 겪었던 일, 저자가 너무 보고 싶은 곳을 눈앞에 두고도 고집부리는 아이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온 일 등등 여행기간 내내 아이와 줄다리기를 했다고 한다.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이라면 모두 공감하는 이야기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스케줄을 아이에게 맞추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지 비록 활자로 읽었지만 눈앞에서 그 상황에 직면한 것 같았다.

아마 나도 몇번 아이를 데리고 해외에 나가서 겪었던 일과 비슷한 상황이 있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아이와 같이 한 여행에서 참고 기다리는 법, 낮은 곳을 보는 법, 편견없이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육체적으로는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이가 엄마를 그곳에 데려다 주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책의 곳곳에서 저자의 이러한 생각이 그저 하는 말이 아니라 오롯이 가슴으로 느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목표없이, 목적없이 바람가는대로 돌아다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동안 얼마를 들여 가는 여행인데 하나라도 더 봐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잃고 빡빡한 답사만 다녔던 것 같다.

물론 8월에도 한치의 빈틈도 없는 일정의 답사를 다녀와야 하지만 조만간 아이를 데리고 그냥 떠나는 여행을 해봐야겠다.

어느날 갑자기 별안간 떠나는 여행! 정말이지 떠나고 싶다.

 

 

오랜만에 서평을 올린다.

그동안 학기말이라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다.

아이 기말고사 준비도 도와줘야 했고 강의하는 과목 시험에 채점에 성적처리까지 거기에 약간의 집안일까지...6월과 7월초는 순식간에 휙 지나간 것 같다.

그 중 가장 힘들었던 건 성적처리였다.

가르치는 것은 어떻게 하겠는데 채점과 성적처리는 정말 스트레스 만빵이었다.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학생들은 그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강사 또한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장난아니다.

해가 갈수록 더해가는 것 같아 심히 괴로웠다.

어지간해서는 스트레스를 안 받는 편이라 자부했는데 평가를 하는 행위는 근래들어 박사논문 쓰는 것보다 더한 스트레스였다.

이런 사족들은 역시 그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음에 핑계를 대기 위한 것들이다.

이래저래 책도 못 읽고 해서 올릴 내용이 없었다.

이제 방학이니 조금 부지런을 떨어볼 생각이다.

 

'남편의 서가'는 방학전부터 사놓고 책상위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책이다.

신문의 책 소개란을 보고 집에 오는 길에 서점에서 구입한 책이다.

출판평론가이자 작가인 남편을 병으로 잃은 저자가 남편을 떠나보내며 쓴 책으로 에세이이자 서평집이다.

남편을 향한 그리움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남편의 병상에서 또 그 사후에 맞닥뜨렸던 여러 상황에 어울리는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책과 관련된 일을 했던 남편과 같이 살면서 자연스럽게 저자 역시 책을 가까이 하게되었고 남편이 세상을 뜬 이후에는 남편이 남긴 책을 통해 그 슬픔을 치유하고 일어서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저자 특유의 감성과 가치관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으면서 그림책부터 소설, 철학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자연스럽게 녹아내어 읽기가 편하다.

부부에게 있어 배우자를 잃는 것은 사지의 절반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고통이라 한다.

그 고통을 남편이 남긴 책을 통해 극복하는 과정이 오롯이 드러나고 있어 코끝이 시끈해지기도 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순간 겁이 나고 무섭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했으면 남편에게 잘해야 하는데 역시 실천이 쉽지 않다!)

또 아이를 키우는 주부 입장에서 느끼는 교육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내가 생각하는 바와 일치하는 것들이 있어서 흥미롭기도 했다.

이땅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라도 생각해봄직한 여러 문제들-특히 사교육-에 대해 저자의 솔직한 생각과 한번 읽어봐야할 책들이 소개되어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책들 중 읽은 것도 있고  한번 읽어봐야지 하는 책들도 있었다.

특히 아이와의 여행기를 내용을 한 오소'바람이 우리를 데려디주겠지'를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 소개된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